"오늘은 숙연하게 하겠습니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대한민국이 슬픔에 잠겼다. 17일 오후 기준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287명이 실종된 대형참사. 꼭 희생자, 실종자와 관계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애통하고 침통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일이다.
LG 트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도 슬픔에 잠겼다. 사실 이런 분위기에 프로야구 경기가 치러진다는 자체가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항상 흥겹고 즐거워야 할 야구장인데, 그것도 때를 가려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팬들과의 약속을 쉽게 어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경기는 진행을 하되, 최대한 숙연한 분위기 속에 선수단의 본분을 다하는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사고 이틀째인 17일 경기 전 만난 LG 김기태 감독은 "오늘은 꼭 필요한 얘기가 아니라면 취재진 미팅을 짧게 줄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긴 연패에 빠져 그런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김 감독 스타일상 그런 의미의 말은 절대 아니었다. 승패에 관계 없이 항상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는 김 감독이다. 김 감독이 이런 요청을 한 것은 세월호 사고 때문이었다. 김 감독은 "어제 경기 후 뉴스를 보는데 정말 가슴이 아팠다. 한 학생이 어머니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는 순간에는 눈물이 나왔다"며 "오늘만큼은 숙연하게 경기를 치르고 싶다"고 말했다. 사고를 당한 고교 2년생과 비슷한 또래의 아들을 둔 김 감독이다.
17일 잠실을 제외한 부산, 대구, 광주 경기는 모두 비로 인해 일찌감치 취소됐다. 하지만 경기 시작 시간은 오후 6시30분까지 비가 내리지 않은 잠실구장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 경기 준비가 이뤄졌다.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사고 첫째날인 16일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상황에 적절치 않은 응원이 진행됐다며 많은 팬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사실 잠실구장도 16일 앰프 사용과 치어리딩이 없었을 뿐이지 팬들의 열기는 제법 뜨거웠다.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16일 오후까지는 대부분의 탑승객이 안전하게 구조됐다는 소식 만이 전해졌다. 하지만 오후가 돼서야 사고 상황 전달이 잘못됐고, 대형 참사가 일어났음이 알려졌다. 경기 준비와 경기에 한창이던 현장에서는 이 사실을 제대로 캐치할 수 없었다고 한다.
17일 잠실구장에는 선수들의 연습 시간에도 평소 흘러나오던 음악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앰프 사용과 치어리딩은 물론, 응원단장도 응원 단상에 오르지 않기로 결정했다. 또, 시구행사도 취소했다. 이날 경기 시구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조해리가 할 예정이었다.
장내 아나운서도 선수 소개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마이크 방송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선수 이름도 최대한 차분한 톤으로 조용하게 소개했다. 또 전광판을 통해 경기 전 수차례 추모의 메시지를 전했다.
모든 이들의 슬픔을 알았는지, 잠실구장에도 경기 시작 직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흘리는 눈물을 맞으며 양팀의 경기는 취소가 됐다.
잠실=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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