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節期)가 참 무섭다. 입춘(4일)을 지나니 북풍한설의 기세도 주춤해진다. 특히 제주에는 노란 복수초며 홍매화가 그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고 하니 뭍에도 봄소식이 머지않았다.
겨울의 별미이면서 봄을 연상케 하는 미식거리가 있다. 바다 향 가득한 진초록의 매생이가 그것이다. 혀끝에 와 닿는 느낌을 채 음미할 겨를조차 없을 만큼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는 매생이국은 겨울 여정 속에 빈속을 덥히기로 제격이다. 매생이가 유독 부드러운 것은 입자가 아주 가늘기 때문이다. 누에 실보다 더 가늘다고 해서 '실크파래', 입에서 살살 녹는다고 해서 '바다의 솜사탕'이라는 애칭도 가졌다.
겨울철(12~3월초) 장흥, 완도, 고흥, 강진 등 남도의 일부 해안에서만 자라는 해조류인 매생이는 바닷물이 잘 통하고 유속이 느린 청정해역이 자생지다. 그중 남도의 매생이 산지 중 원조 격은 전남 장흥군 대덕읍 내저리 포구이다.
겨울철 내저리 포구 매생이 양식밭은 마치 바다 위에 마른 대숲이라도 펼쳐진 듯 갯벌에 꽂은 말장(대나무 기둥)이 빼곡하다.
매생이 채취 작업은 간단치 않다. 엎드린 채 배 밖으로 상반신을 쭉 내밀고는 바다에 떠 있는 대나무 발을 건져 올려 초록의 매생이를 연신 손으로 훑어 내야한다. 찬 바닷바람에 일렁이는 거친 물살과 맞서야 하다 보니 장시간 작업에 가슴 통증도 느끼게 된다. 목넘김이 부드러운 매생이는 이처럼 추운 겨울 어민들이 '가슴 아프게' 채취한 결과물이다. 헌데, 내저리 포구의 올 겨울 매생이 작황은 신통치가 않다. 겨우내 채취를 못하고 있다가 설을 전후해서 소출이 나고 있는 형편이다. 어민들은 "지난여름 가뭄과 따순 겨울, 온난화"를 그 주범으로 꼽고 있다.
일단 채취한 매생이는 포구 방파제에 마련된 세척기에 넣고 깨끗한 바닷물로 씻어낸다. 이후 작업장으로 옮겨 바닷물에 한 번 더 헹궈내 어른 주먹만 한 덩어리(재기)로 뭉쳐 놓는다. 마치 비녀를 꼽기 위해 함초롬히 빗어 내린 여인의 뒷머리 모양과 비슷하다. 한 재기의 산지 가는 일기와 수확량에 따라 매일 다르다.
매생이는 예로부터 별미로 통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매생이를 '매산태'라고 부르며 '빛깔은 검푸른 게 누에 실보다 가늘다. 끓이면 연하고 미끄럽고 맛이 달다'고 적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매생이가 제 대접을 받은 것은 30여년 남짓으로,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산지에서 조차도 푸대접이었다. 혹여 김발에라도 달라붙게 되면 제값 받지 못한다고 곧장 떼어내던 잡풀 같은 존재였다. 매생이가 섞인 김은 퍼석해져 상품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신세가 완전히 역전 됐다. 매생이발에 김이 달라붙을까 걱정이다. 그만큼 매생이 벌이가 훨씬 낫기 때문이다. 매생이가 미용은 물론 간 기능 회복 등에도 좋다고 알려지면서 전남 해안지방에는 매생이 양식밭이 날로 넓어지고 있다.
매생이는 주로 국을 끓여 먹는다. 우선 매생이를 촘촘한 바구니에 담아 흐르는 물에 잘 흔들어 씻어 놓는다. 이후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 생굴과 다진 마늘을 넣고 살짝 볶은 후 냄비에 물을 붓고 살짝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매생이와 국간장을 넣고 잘 저어준 후 한소끔 더 걸쭉하게 끓인다. 이후 통깨를 넣는데,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매생이국은 마치 유동식처럼 국물이 걸쭉해서 속풀이에 그만이다. 짙은 초록에 부드러운 질감이 매생이국 한 숟가락에 봄을 기다리는 남도의 상큼한 바다 기운이 다 녹아 내려 있는 듯하다.
단, 매생이국은 조심스럽개 먹어야 한다. 매생이국은 팔팔 끓여 둔 상태에서도 김이 별로 나지 않아 급하게 넘겼다가는 자칫 입안을 데일 수 있다.
이밖에도 매생이는 매생이전, 매생이무침, 매생이김치, 매생이수제비, 매생이칼국수 등 다양한 요리로 맛볼 수 있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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