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중국 슈퍼리그 최고 명문' 광저우 헝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광저우는 28일(한국시각) 홈페이지를 통해 '상호 합의 하에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과 계약을 해지 하기로 했다. 그동안 팀을 위해 보여준 칸나바로 감독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 행운이 가득하길 빈다'고 발표했다. 칸나바로는 이탈리아 축구 스타 출신으로 2006년 독일월드컵 우승 주역이다. 광저우와 칸나바로 감독의 결별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중국 언론은 '칸나바로 감독이 광저우 복귀 대신 이탈리아에 남을 것'이라며 '대신 팀의 정신적 지주인 정쯔가 임시 감독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광저우가 칸나바로 감독과 계약을 해지한 것은 그의 연봉 때문이다. 2022년까지 광저우와 계약이 돼 있는 칸나바로 감독은 연봉으로 1200만유로(약 166억원)를 받아왔다. 현재 광저우는 연말 예정된 중국 슈퍼리그와 FA컵에 참가할 수 있을지 조차 미지수일 정도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모기업 헝다 그룹 상황이 최악이다. 중국의 부동산 재벌인 헝다 그룹은 코로나19 여파와 중국 정부의 토지 정책 변화로 인해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 빚이 355조원에 이르며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놓였다. 모기업의 위기 속 광저우도 흔들리고 있다.
광저우의 위기는 단순히 한 클럽의 위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광저우는 중국 슈퍼리그의 상징이자 견인차였다. 2011년부터 무려 8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최고 명문이었다. 2010년 헝다 그룹에 인수된 광저우는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중국축구의 황금기를 열었다. 광저우와 헝다 그룹의 성공을 따라 다른 팀과 기업들도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다. 카를로스 테베스, 디디에 드로그바, 니콜라 아넬카, 오스카, 헐크 등 유럽 최정상 스타들이 중국 무대를 밟았다. 테베스는 리오넬 메시를 뛰어넘는 최고 연봉을 수령하기도 했다.
그 속에서도 광저우는 최고였다. 2018년과 2020년을 제외하고 우승 트로피를 놓치지 않았다. 영향력은 점점 커졌다. 아시아 무대에서도 힘을 쓰지 못하는 중국 대표팀 전력 강화 일환으로 '아예 광저우를 대표팀화 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광저우는 마르셀로 리피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으로 보내고, 브라질 출신 선수들의 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중국축구협회의 실질적인 후견인 역할까지 했다.
하지만 규모에 맞지 않는 투자가 이어지며 '거품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축구협회는 외국인 선수 영입 금액에 사치세를 매기고, 샐러리캡 등을 도입하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모기업들이 휘청이며 슈퍼리그가 직격탄을 맞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챔피언' 장쑤 쑤닝이 재정난을 이유로, 전격 해체한 것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간 엄청난 돈을 쏟아붓던 다른 빅클럽들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가 이끌고 있는 산둥 타이산, 상하이 하이강, 베이징 궈안 정도를 제외하고, 임금 체불이 없는 팀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광저우까지 무너지고 있다. 그런 광저우의 몰락이 슈퍼리그의 추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 대표팀이 내년 카타르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할 경우, 시진핑 주석의 축구에 대한 관심이 더욱 멀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 분명한 것은 당분간 슈퍼리그의 씀씀이가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K리그에 또 다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과거에도 슈퍼리그는 아시아쿼터로 한국 선수들을 선호했지만, 그 중에서도 현역 국가대표급이 아니면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가성비가 중요한 지금, 눈을 확 낮추고 있다. 한국 선수든, 외국인 선수이든, 특급이 아니더라도 K리그에서 검증된 선수라면 'OK'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여기에 젊은 선수들을 데리고 좋은 성적을 낸 김종부 허베이 감독의 성공으로 한국인 사령탑에 대한 선호도가 더욱 높아졌다. 벌써부터 한국 에이전트에게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단계에서 슈퍼리그의 몰락이라고 단정하기 이르다. 시 주석이 다시 '축구굴기' 카드를 꺼내거나, 정부 차원에서 축구에 관심을 보일 경우, 또 다른 흐름이 생길 수 있다. 그 사이 슈퍼리그가 시스템을 재정비한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 중국 축구의 움직임을 계속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