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중국)=스포츠조선 류동혁 기자]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다섯살 때 운명적으로 스케이트를 만난 소년은 '나의 꿈'을 그려오라는 숙제에 '나의 꿈: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꿈을 이루기 위해선? 열심히 연습'이라고 또박또박 적었다. 16년 뒤 그는 세계 최고의 쇼트트랙 스케이터가 됐다.
황대헌(23·강원도청)은 9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선을 2분9초219로 1위로 통과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위 캐나다의 스티븐 두브와(2분9초254)와 3위 세멘 엘리스트라포프(2분9초267·러시아올림픽위원회)를 따돌렸다. 황대헌의 우상은 올림픽 6관왕 안현수(현 중국대표팀 기술코치)다. 안현수가 지켜보는 앞에서 황대헌이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될성부른 떡잎이었던 황대헌은 불법도박혐의로 기존 대표팀 선수들이 제외되며, 고등학교 신분으로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렸다. 후순위였지만, 부상자들이 발생하는 '행운'이 따르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황대헌은 귀중한 기회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날카로운 스케이팅으로 새로운 에이스로 떠올랐다. 2016~2017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2차 대회 남자 1000m에선 세계 신기록(1분20초875)을 작성해 모두를 놀래켰다.
꿈에 그리던 올림픽, 4년 전 그것도 고국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에 나섰다. 당시 세계랭킹 1위를 달리며 금메달 후보로 꼽혔던 1500m 결선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눈앞에서 메달을 놓쳤다. 두번째 종목이던 1000m 준준결승에선 우리 선수 3명이 함께 뛴 대진 불운 끝에 결승선 앞에서 넘어져 실격 처리됐다. 500m에서 은메달을 수확했지만 분명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절반의 성공을 거둔 황대헌은 더욱 강해졌다. 그해와 이듬해 세계선수권대회 500m에서 1위에 오르면서 에이스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5월 치러진 2021~2022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남자부 종합 1위를 차지하며 베이징동계올림픽 개인전과 단체전 출전권을 모두 거머쥐었다. 올 시즌 월드컵 성적도 훌륭했다. 황대헌은 월드컵 1~3차 대회 개인 종목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를 수확했다.
에이스로 나선 두번째 올림픽, 그 앞에는 '판정'이라는 엄청난 변수가 가로막고 있었다. 1000m 예선에서 1분23초04의 압도적 기록으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운 그에게 거칠 것은 없어보였다. 7일 열린 1000m 준결선, 런즈웨이와 리원룽, 두 중국 선수 사이에 선 황대헌은 환상적인 기술을 앞세워 1위로 통과했지만, 실격 판정을 받았다. 늦게 레인을 변경했다는 이유였다. 황대헌은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대신 자신의 SNS에 '장애물이 있어도 피하지 말고 계속 전진하라'는 마이클 조던의 명언을 올렸다.
그의 다짐대로였다. 1500m에 나선 황대헌 판정과 텃세라는 장애물을 피하지 않고, 오롯이 혼자 힘으로 전진하며 '1인자 자리'에 올랐다. 그래서 더 값진 결과였다.
베이징(중국)=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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