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스페인)=스포츠조선 김진회 기자] "그 동안 준비한 것을 보여준다면 충분히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을 겁니다."
박승규 감독(50)은 15년 만에 출전한 데이비스컵 파이널스(본선)이 열리기 직전 한국 남자테니스대표팀의 선전을 예고했다.
사실 박 감독의 바람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세계랭킹 21위에 불과한 한국의 객관적 전력은 B조에서 맞붙을 국가(스페인 2위, 캐나다 6위, 세르비아 11위)보다 떨어지는 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평가만 받아도 성공한 대회였다.
하지만 한국은 첫 경기부터 파란을 일으켰다. 2단식 1복식으로 구성된 경기 결과는 패배였지만, 캐나다와 대등하게 맞섰다는 점에서 세계 테니스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단식 첫 주자부터 이변을 연출할 뻔했다. 세계랭킹 467위 홍성찬은 141위 포스피실을 상대로 1-2로 분패했다. 1-1로 맞선 3세트에서도 3게임을 연속으로 따냈고, 4-1로 앞서가다 상대의 분전에 4-4 동점을 허용했다. 결국 6-6으로 타이 브레이크 상황에서 2-4로 뒤지다 3연속 득점으로 5점에 선착했지만 이후 연속 실점으로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홍성찬의 선전은 한국 팀에 큰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신호였다.
이 좋은 기운을 '에이스' 권순우가 받았다. 그리고 코트에서 세계랭킹 74위의 역량을 마음껏 뽐냈다. 세계랭킹 13위 펠릭스 오제 알리아심을 2-0으로 완파했다. 승부처는 1세트였다. 과도한 긴장감에 내리 3게임을 내줬다. 그러나 권순우는 "긴장하지 말고 공격적으로 맞서라"는 박승규 감독의 조언에 공격적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특히 1m93의 장신인 알리아심의 무게 중심이 위쪽에 쏠려있어 최대한 낮은 코스로 공을 보내려고 한 것이 주효했다. 알리아심은 실수가 잦아졌고, 권순우는 1세트 타이 브레이크 상황 4-5로 뒤진 상황에서 연속 3득점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자신감을 얻은 권순우는 2세트에 알리아심을 더 거세게 몰아붙였다. 서브, 스트로크, 경기운영 등 톱 플레이어들과 비교해도 나무랄데 없는 기량을 발휘하며 승리를 따냈다.
바통을 이어받은 송민규-남지성 복식조의 결과도 아쉬웠다. 1세트 접전 끝에 5-7로 내준 송민규-남지성 조는 2세트에서 7-5로 설욕에 성공했다. 3세트에서도 분위기는 좋았다. 첫 경기부터 상대 서브게임을 브레이크시키며 2-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3-3 동점이 된 뒤부터 한 게임도 따내지 못하고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한국의 예상치 못한 경기력에 세계가 놀랐다. 원동력은 준비를 잘했다는 것으로 대변된다. 박 감독은 지난 3월 오스트리아와의 대회 예선을 이긴 뒤 6개월 동안 선수들의 국제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해외 투어 경험을 많이 쌓게 했다.
대회 직전에는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를 뛰는 권순우를 제외하고 다른 선수들을 데리고 태국 전지훈련을 펼쳤다. 이 기간 송민규-남지성 조는 ATP 방콕오픈 챌린저 복식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한국 남자 테니스 대표팀은 흡사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했던 히딩크호와 닮았다.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은 대회 개막 100일을 남겨두고 하루에 1%씩 향상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그 약속은 실전에서 지켜졌다. 히딩크처럼 박 감독의 자신감에도 뚜려한 이유가 있었다. 발렌시아(스페인)=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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