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작가가 쓴 전원생활 에세이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은퇴 후 인적이 드문 시골로 내려가 집을 짓고 살아가는 건 어떤 사람들에게는 로망이다. 박성희 씨도 그랬다. 경남 진주·마산 등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대학 시절부터 줄곧 대도시에서 지냈다. 고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회사에 다니기도 했다. 자녀들도 다 장성하자 더는 도시에 살 이유가 없어졌다. 아파트에서 요양원으로 이어지는 삶.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는 좋아하는 색깔과 공기와 냄새 소리를 들으면서 살고 싶었다. 그가 강원도의 한 고적한 산골에 집을 짓기로 한 이유였다.
최근 출간된 '집의 일기'(책사람집)는 한 여성이 인생의 황혼 무렵에 집을 짓고, 한 해를 보내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책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지나가는 풍경과 소리가 담겨있다. 생명이 움트고, 맹렬히 자라다가, 서서히 기운이 쇠퇴하고, 마침내 소멸하는 과정이 책 곳곳에 스며 있다.
일흔 무렵의 저자는 남편으로 추정되는 D씨와 함께 강원도 한 산골에 집을 짓는다.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 자재의 사양을 낮추고, 다락방을 포기한다. "남편과 아이들의 입장에서 최선의 길을 찾으며" 살았기에 자신의 결정으로 모든 것이 이뤄지는 집짓기는 저자에게 만만찮은 두려움과 동시에 행복감을 준다.
그는 집을 지은 후 텃밭을 가꾸고, 꽃에 물을 주며, 삽질하고, 물길을 세심히 살펴보면서 세월을 보낸다. 가끔 집 근처까지 내려오는 고라니와 고양이와 인사하고, 먼 길을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텃밭에서 갓 따온 싱싱한 샐러드와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온종일 영화를 몇 편이나 보고, 책을 읽다가 브라우니를 구워 이웃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시간이 재촉하지 않는 삶", 힘들면 멈출 수 있는 삶을 살아간다. 고희가 넘어서 깨달은 삶의 진리는 비교적 간단했다.
"이제는 터득했다. 그렇게 기를 쓰고 해내야 할 일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한다.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진흙탕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대로 충분하다."
하지만 전원생활이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순식간에 힘 좋은 벌레에게 17방을 물리기도 해 간지럼을 참으며 밤잠을 설치고, 여름에는 장마로 물길이 불어날 일을 걱정해야 하기도 한다. 수십 년간 몸에 밴 빨리 움직이고, 많이 취득하고, 결과를 확인하는 습성을 버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책은 비발디의 '사계'처럼 봄·여름·가을·겨울 네 장의 표제로 이뤄졌다. 이제야 기쁨을 알게 된 '봄', 한가하고 게으른 시간의 긴 꼬리 '여름', 고요하게 반짝이는 날들로 이뤄진 '가을', 달빛을 따라 눈 덮인 산길을 걷는 '겨울. 이런 사계절을 거치며 저자는 세월의 덧없음과 동시에 축복을 느낀다.
"십이월의 한가운데. 불을 피우고 간소한 저녁을 짓는다.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고 담백한 손두부 몇 점을 담고 생선도 구웠다. 어둠 덮인 뜰에는 눈이 내린다. 차 한 잔, 음악과 함께 하루가 저문다. '지금이 우리가 살아온 평생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야.' D가 말했다. 정말 그렇다.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다."
224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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