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정훈이 유격수를 준비한다고? 누가 그래?"
지난달 30일 고척 스카이돔. 침울했던 김태형 롯데 자이언츠 감독의 얼굴에 문득 미소가 감돌았다.
정훈은 때론 후배들을 향해 "요즘 방망이가 안 맞던데 긴장해라. 나 그자리 연습한다"는 농담을 건넨다. 살짝은 진심 섞여있다.
평생을 내외야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살아온 그이기에 가능한 얘기다. 전성기 때는 2루수였고, 말년 들어 1루수로 전향해 안정된 포구를 과시했다. 3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중견수도 뛰고, 김태형 감독 부임 이후에는 3루수와 좌익수로도 뛰었다.
당시 팀이 줄부상에 시달리는 힘겨운 상황이었다. 당시 김태형 감독은 "정훈에게 '가능하냐' 물으니 된다고 하더라. 달리 방법도 없어 출전시켰다"며 웃은 바 있다. 당시 정훈은 "감독님이 시키면 하는 거다. 2루수 해봤으니 3루는 가능한 거고, 중견수로도 뛰는데 좌익수인들 못 뛰겠나. 그게 내가 살아남는 방법"이라며 진지하게 답했다.
하지만 올시즌 정훈은 1루수와 지명타자로만 뛰고 있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수에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전날 주전 유격수 전민재가 뜻하지 않은 '헤드샷' 사구로 인한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 정훈은 이날 펑고 훈련에 끼어들었다. 박승욱, 이호준, 한태양과 함께 유격수 자리에서 펑고를 받고, 잔스텝 후 송구까지 가다듬었다.
38세 베테랑의 유격수 도전은 머릿속에 없었던 선택지일까. '유격수 옵션 중에 정훈도 있나'라는 질문에 김태형 감독의 눈이 둥그래졌다. 그리고 이내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정훈에게 펑고는 그냥 취미라고 보면 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자리에서 자유롭게 연습한다. 포지션은 내가 쓰는 거고."
농담처럼 넘겼지만, 최고참급 연차에도 여전한 열정이 빛나는 정훈이다. 거듭된 상승세에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롯데 선수단을 다잡는 존재감이다.
고척=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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