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의외성이 커서 야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이번 스토브리그 FA시장.
강백호 한화행, 박찬호 두산행, 최원준 김현수 KT행, 김재환 SSG행, 황재균 은퇴 등 다채로운 움직임이 있었다. 가장 놀라운 이적 중 하나는 최고령 FA 최형우(43)의 삼성 컴백이었다.
단지 나이가 많아서? 그래서 놀란 건 아니었다. 최형우는 마흔둘이던 지난해도 중심 타자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보여줬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올해나 내년에 갑자기 무너질 타격 메커니즘이 아니었다. 에이징커브가 있었다면 벌써 왔어야 할 나이.
문제는 삼성 라이온즈 내부 사정이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스토브리그였다. 유정근 대표, 이종열 단장 부임 후 쓸 때 과감하게 쓰는 삼성이었지만 이번에는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많았다.
우선, 강민호 김태훈 이승현 등 3명의 내부 FA를 모두 잡기로 방침을 정했다. 큰 돈 쓸 일도 있었다. 1년 뒤 FA가 되는 원태인 구자욱이란 투타 거물 두 선수를 비FA다년계약으로 미리 잡아야 했다.
그 와중에 2025년 상위 40인 몸값은 우승팀 LG 트윈스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내년부터 5%씩 늘어나는 샐러리캡 여유분을 감안하더라도 빠듯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전력 구성상 우선 순위도 팀 내 가뜩이나 많은 왼손 타자가 아니었다. 최대 약점인 불펜보강이 우선과제 처럼 보였다.
하지만 삼성의 선택은 최형우였다. 딱 하나 잡은 외부 FA가 바로 '왕조시절'의 상징이었다.
삼성은 왜 그랬을까. 이유가 있었다. 선수들이 원했다. 그냥 원하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건의했다.
구단은 열려 있었다. 검토했고, 가능한지 모색했다. 협상 끝에 모셔오기에 성공했다.
프로야구 출범 후 첫 상향식(Bottom Up) FA 영입 사례였다.
최형우 영입을 위해 동분서주한 삼성 이종열 단장은 계약을 마친 뒤 "우리 선수들이 먼저 최형우 선배 영입을 제안했다. 주장 구자욱을 통해 정식으로 의뢰했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선수들이 구단보다 먼저 최형우 선배에게 "삼성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간청했다. 우승이란 대망을 위해 똘똘 뭉친 후배들의 진심에 선배의 마음이 움직였다.
관건은 삼성 구단이었다.
아무리 선수가 요청한다고 해도 한정된 자금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최종 결정할 의무와 책임은 구단에 있었다.
제안을 받은 이종열 단장과 이를 보고 받은 유정근 대표는 선수단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삼성 구단은 대체 왜 망설임 없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우승 스피릿' 때문이었다. 최형우 선배를 잡아달라는 선수단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다는 건 그만큼 우승에 대한 열망이 강렬하다는 의미. 제로섬 관계인 타자들로선 개인적 친분과 별개로 최형우 복귀가 손해인 선수도 분명히 있다. 당장 캡틴 구자욱만 해도 당초 새 시즌 박병호가 빠진 지명타자와 외야를 오가며 체력 세이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줄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보다 12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먼저 생각했다.
자신들이 원한 '왕조의 상징'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우승 도전에 나서는 그림. 구단은 단지 선수 하나 플러스가 아닌, 돈 주고 바꿀 수 없는 팀워크이자 '팀 스피릿' 확보라는 판단을 했다. 최형우의 2년 몸값 26억+보상금 15억원까지 무려 41억원을 아낌없이 투자한 이유다. 지난 연말 서울 원정숙소인 청담동 리베라 호텔에서 이종열 단장의 최형우 영입 협상 장면을 지나다가 우연히 보게된 구자욱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 이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서둘러 자리를 피해줬다.
선수들이 원한 첫 FA 영입 사례가 된 '우승청부사'는 "우승반지 끼게 해주겠다"며 FA 강민호의 계약을 촉구했다.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요청하는 선수들도, 그 요청을 들어주는 구단도 아름답다. 이것이 바로 삼성야구가 2026년 새해에 라이온즈파크에 꽃피울 낭만의 시작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