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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우리는 자기 고향이 없죠. 기차를 타고 땅 위를 달리지만, 사실은 땅 안에서 하늘로 날아가는 거예요. 언제 어디로,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떠돌아야 했던 우리 고려인들은 마치 새처럼 날아다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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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마을이 마련해준 그의 작업실 겸 거처에는 캔버스 위로 무수한 점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강제 이주의 비극을 상징하는 기차부터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고려인의 얼굴들까지. 문 화백과의 대화에서는 그가 평생을 바쳐 그려온 작품 세계와 고려인으로서의 삶의 궤적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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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기차에 창문을 그려 넣은 것은 그것이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증조부 때부터 러시아에 정착해 살았지만 우리는 늘 떠나야 했죠.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어도 독립 후 거세진 민족주의 정책은 우리를 다시 이방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우수한 의사와 과학자도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되는 현실 속에서, 고려인의 운명을 열차에 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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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화백의 화풍을 상징하는 독특한 점묘법(Pointillism)은 역설적으로 생사의 고비에서 완성됐다. 심장 수술 후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던 그는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작은 종이에 점을 찍으며 고통의 시간을 견뎌냈다.
그의 붓끝은 역사적 인물들에게도 향했다. 특히 카자흐스탄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던 홍범도 장군의 초상화에는 문 화백의 유감이 깊게 서려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강제 이주 후 러시아 정부의 행정 탓에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던 장군의 분노를 그렸습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지 못한 우리 영웅에 대한 헌사였죠."
고려인마을 홈페이지에 경매가 200억원에 올라 있는 이 작품에서 그는 홍 장군의 공적을 기려 훈장 14개를 가슴에 그려 넣었다.
그가 광주에 정착한 것은 운명과도 같았다. 1994년 그림 20여 점을 들고 무작정 한국을 찾았던 그는 우연히 광주 금호문화재단에서 전시회를 열게 됐고, 모든 작품이 매진되는 큰 성공을 거뒀다. 그 과정에서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광주에서 '문바위'를 찾았습니다. 제 성씨인 문(文) 씨의 시조 묘역과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보며, 제 뿌리가 이곳 광주에 있음을 확신했죠. 1886년 러시아 우수리스크로 이주했던 할아버지가 그토록 그리워했을 고향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3년 전 카자흐스탄에서 잘못된 무릎 수술로 고생하던 그는 한국 의료진과 이천영 광주 고려인 마을 이사장을 비롯한 동포들의 도움으로 재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 이제 그는 자신을 품어준 광주 고려인마을에 보답하기 위해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2월 고려인마을에 문 화백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공식적인 '문빅토르 미술관'이 문을 연다. 1층은 갤러리, 위층은 작업실로 꾸며져 방문객들이 고려인의 역사를 예술로 체험하는 공간이 될 예정이다.
"내 그림이 카자흐스탄에 남겨지면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모국에서는 고려인의 역사가 됩니다.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주요 인물들과 광주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초상화 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노동자로만 인식되는 고려인의 이미지를 품격 있는 예술로 바꾸고 싶습니다."
그는 젊은 고려인 후손들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한국에 와서 돈만 벌 뿐, 한국어와 역사를 배우려 하지 않는 태도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매일 한두 마디라도 공부하면 1년이면 말을 잘 할 수 있어요. 언어를 알아야 자신의 뿌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문 화백은 캔버스에 다시 점을 찍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은 작품이 나온다"는 그의 말처럼, 그가 찍는 무수한 점들은 이제 흩어진 고려인의 역사를 광주라는 도화지 위에 하나로 이어 붙이고 있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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