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전북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은 시내에서 유일하게 공단이 있는 동네다.
연간 1천만명이 찾는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관광업과 서비스업이 발달한 전주에서 하늘을 향해 치솟은 굴뚝 행렬은 여기가 아니면 찾기 힘들다.
'굴뚝'이 말해주듯 산업화 시기인 1970∼80년대 자연스레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자 시민들의 일터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것도 이젠 다 옛말이다.
1960년대 후반 무렵 조성돼 60년을 버텨온 제1, 2산단에는 극심한 노후화가 드리워졌다.
그 많던 공장들이 고속도로 접근성이 좋은 외곽이나 다른 지역으로 터를 옮기면서 현재는 화학·제지업체 몇 곳과 공업사들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때 힘찬 기계 소리와 노동자의 땀이 흘렀던 공장 일부는 오랜 시간 방치돼 도심 흉물로 전락했다.
켜켜이 쌓인 붉은 벽돌 사이로 고개를 내민 창문마다 깨진 유리가 빼곡하고 방치된 공장 안팎은 무성한 잡초와 나무 덩굴이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다.
철길을 따라 들어선 카세트(Compact Cassette) 공장인 쏘렉스도 폐업 이후 25년 넘게 한 자리에 방치된 상태였다.
1980∼90년대 LP와 함께 아날로그 음악 감상의 핵심 매체였던 카세트는 워크맨(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의 등장으로 개인 음악 문화 확산에 불을 지폈으나 잡음(노이즈)이 거의 없는 디지털 방식의 콤팩트디스크(CD)의 등장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췄다.
그런 기술의 발전으로 문을 닫은 그 공장이 예술가의 문화·창작 공간이자 사랑받는 관광지로 변모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전주시는 150억원을 들여 2018년 멈춰 선 카세트 공장을 '팔복예술공장'으로 이름 짓고 문화의 숨결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폐공장의 뼈대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곳곳에 조형물을 설치해 여타 문화시설과는 남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크게 A동과 B동으로 이뤄진 팔복예술공장에는 예술창작·전시 공간, 창작 스튜디오, 전망대, 예술 놀이터, 전시실 등이 들어섰다.
개관 이후 전시실에서는 앤디 워홀, 앙리 마티스, 구스타프 클림트 등 세계 예술계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삭막했던 이곳에 지방에서는 드문 전시 공간이 들어서자 수만 명의 관람객이 몰렸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인근 부지에 주차장 증설 공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지난 26일 현대미술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마르크 샤갈(1887∼1985) 특별전(3월 10∼6월21일)이 열리는 팔복예술공장을 찾았다.
예술공장 벽면엔 크고 깊은 눈, 뚜렷하고 긴 코, 얇은 입술과 차분한 표정의 샤갈 얼굴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복합문화공간이어서 평일인데도 전시를 보려는 이들로 공장 일대가 북적였다.
서울에서 온 이유진(30)씨는 "깔끔한 미술관도 좋지만, 이렇게 폐공장 느낌이 살아있는 예술공간도 독특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며 "요새 카페나 레스토랑도 벽이나 천장 마감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팔복예술공장을 돌아보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예술공장 주차장부터 놀이터까지 천천히 걸었다.
완연한 봄기운에 이따금 부는 바람, 반세기도 더 지난 차가운 콘크리트 건축물의 대비가 묘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해마다 4월 하순이면 예술공장 앞 철길은 흐드러지게 피어난 이팝나무꽃으로 하얗게 물든다.
회색빛 공장과 우뚝 솟은 굴뚝 주변으로 머지않아 순백의 이팝나무꽃이 흩날릴 때 그 나무 아래로 우수수 꽃비를 맞으며 달리는 열차, 그리고 사랑을 갈구했던 예술가 샤갈을 만나보면 어떨까!
팔복예술공장을 운영하는 전주문화재단의 최락기 대표이사는 "노후 폐공장을 문화·예술의 기지로 바꾸는 사업이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다"며 "앞으로도 계절마다 전시와 축제를 접목한 다양한 행사를 열어 팔복예술공장을 지역의 문화를 드높이는 중심 시설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jay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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