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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에세이]어느덧 4번째, '국민감독'의 숙명과도 같은 고민

노재형 기자

기사입력 2017-02-21 23:56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이 지난 17일 WBC 대표팀 훈련장을 찾아 김인식 감독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있다. 오키나와=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사령탑 김인식 감독은 '국민 감독'으로 불린다.

1회, 2회 WBC에서 대표팀을 각각 4강, 준우승으로 이끌어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였다는데서 붙여진 영예로운 칭호다. '국민 감독'은 2015년 프리미어12에서도 대표팀을 맡아 우승을 일궈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 지휘봉은 아무나 잡는게 아니라는 '말'까지 나왔다. '김인식=대표팀 감독'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김 감독은 이번에도 WBC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다. 지난 12일 소집된 대표팀은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을 마치고 23일 한국으로 돌아간다. 지금까지 훈련은 순조롭다.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컨디션도 좋고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도 형성돼 있다. 선수들 표정에는 고민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김 감독을 보좌하는 6명의 코칭스태프들도 환한 얼굴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취재진을 대한다.

김 감독도 그럴까. 절대 아니다. 김 감독은 최근 있었던 일화 하나를 공개했다. 같은 오키나와에 전훈 캠프를 차린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이 지난 17일 대표팀 훈련장인 구시가와구장을 찾았다. 김인식-김성근 두 베테랑 사령탑이 일본서 자리를 함께 했으니 서로 무슨 얘기를 할까 관심이 높았다. 그때 김성근 감독이 김인식 감독을 안쓰럽게 쳐다보면서 한마디 했단다. 김인식 감독은 "날 보고 글쎄 얼굴이 작아지고 머리가 더 벗겨졌대"라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위로차 던진 농담이었는데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김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로 잠도 잘 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프로 선수들을 데리고 나간 국제대회만 벌써 4번째지만, 마음은 매번 똑같다고 한다. 경험이 많다고 해서 고민의 깊이가 달라질 리 없다.

김 감독은 "코치들이 이것저것 묻고 또 얘기를 들으면 결정을 어떻게 내려야 하니까 고민이 많다"면서 "경기에 딱 들어가면 그런게 없어지는데 그 전에는 똑같은 고민을 한다. 1,2회 대회 때도 그랬다"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사실 1,2회 WBC에서는 대표팀 전력이 좋았다.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이 큰 역할을 해줬고, KBO리그 선수들도 WBC를 통해 스타로 성장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1회 때는 박찬호가 실질적으로 다 해줬지. 그때는 메이저리그 애들이 많았고, 또 이승엽이 중요할 때마다 한 방씩 쳐줬으니까. 2회 때는 이범호 김태균 추신수가 잘 쳐줬어. 마운드에서는 정현욱이 좋았고"라고 했다.

그렇지만 이번 4회 WBC는 전력을 구성할 때부터 고민과 갈등이 있었다. 오승환 발탁을 놓고 비판 여론이 높았고, 대표팀 명단에 든 선수들 중 일부는 부상으로 빠졌다. 메이저리그에 가 있는 추신수 김현수 강정호 박병호도 불참이 최종 결정됐다. 역대 최약체 WBC 대표팀이란 소리도 나온다.


그래도 김 감독은 선수들을 향해 인상을 전혀 찌푸리지 않는다. 취재진을 만나면 객관적인 팩트를 전하면서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내놓는다. 처음 태극마크를 단 박석민 서건창 장시환 원종현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며 용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감독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하다. '국민 감독'이기 때문에 겪는 숙명과도 같은 고민이 마냥 감춰지지만은 않는 것 같다.
오키나와=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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