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의4구는 위기를 넘기기 위한 최선의 방어 중 하나다. 위기에서 잘치는 타자에게 안타를 맞으면 팀이 패할 위기가 온다고 생각할 때, 타자를 거르고 약한 다음타자와의 승부를 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고의4구를 내보낸뒤 다음 타자를 막아낸 성공케이스는 49번이고 다음 타자에게 안타나 볼넷, 희생플라이 등을 내주는 경우가 23번이었다.(연속 고의4구는 한번으로 계산)
삼성이 7번의 고의4구 모두 성공했다. 다음 타자에게 안타 등으로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주로 상대 강타자가 고의4구의 표적이 된다. KIA의 최형우와 SK 최 정이 각각 5번씩 고의4구로 출루해 이 부문 1위를 달린다. 4개를 기록한 선수 중 KIA 김선빈이 눈에 띈다. 지난해까지 딱 한번 고의4구를 경험했던 김선빈은 올해만 4번 걸어나갔고, 그중 하루에 3번, 그것도 연타석으로 고의4구 출를 한 이색적인 경험을 했었다. 지난 5월 28일 광주 롯데전이었다. 롯데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시 김선빈이 치면 안타가 되는 절정의 타격감을 보이고 있었고, 공교롭게도 4-4 동점이던 7회말 2사 2,3루, 9회말 1사 2,3루, 11회말 1사 1,3루 등 계속 김선빈 앞에 찬스가 왔었다. 롯데는 7회와 9회에선 점수를 주지 않아 승부를 연장까지 몰고 갔지만 결국 11회말 다음타자인 최원준이 끝내기 만루홈런을 터뜨려 승리했었다.
김선빈은 당시 "처음 고의4구가 나올 때 나를 피하는게 느껴져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면서 "하지만 이후 두번은 나에게 온 타점 찬스가 날아가 기분이 나쁘더라"라고 했다. 3타석 연속 고의4구가 진기한 기록일텐데 더한 기록도 있다. 1984년 롯데의 홍문종은 무려 이틀간 9연타석 고의4구를 경험했다. 당시 삼성 이만수와 타격왕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삼성이 이만수를 타격왕을 만들기 위해 홍문종에게 이틀간 타격 기회를 주지 않은 것. 홍문종은 이때 한경기 최다 고의4구(5개)의 기록도 갖고 있다.
현역 시절 수비형 포수였던 두산 김태형 감독에게도 고의4구로 걸아나간 기억이 있다고. 김 감독은 "한번인가 있었는데 내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겠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치겠다고 노려보고 방망이를 들고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편한 표정으로 방망이도 그냥 어깨에 올려놓고 있어야할지 난감했었다"며 웃었다.
고의4구로 걸어나가는 선수는 기분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다음 타자는 기분이 나쁜 경우가 많다. 결국 상대팀이 승부할 상대로 자신을 골랐다는 뜻인데 그것은 자신이 잘 못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심리적인 흥분이 수비적으로 좋은 결과로 나올 수도 있고, 오히려 그것이 계기가 돼 타자가 잘치는 경우도 있다.
고의4구에 대한 재미있는 소문도 있다.
KIA에서 뛰었던 최희섭은 아마시절 상대팀이 고의4구로 거를 때 공을 바운드시켜서 던졌다는 소문이 있기도 했다. 최희섭의 덩치가 커서 고의4구로 빼는 공도 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하지만 최희섭 본인에게 확인한 결과 그 소문은 사실무근이라고.
발빠른 외야수 정수빈(경찰)은 고교시절 만루에서도 고의4구로 걸어나간 적이 있다고 했다. 김진욱 kt 감독이 증언을 했다. 유신고 시절 팀이 위기때 투수로 등판해 위기를 막아내고, 타격도 잘해 상대방이 만루에서도 고의4구로 내보냈다는 것. 본인도 인정했다. 심지어 고의4구로 던진 공까지 쳤다고 얘기를 했다. 이를 들은 팀 동료들도 믿지 못했지만 사실로 밝혀졌다.
메이저리그는 올시즌부터 고의4구는 공을 던지지 않고 감독의 사인으로 그냥 타자를 1루로 보내게 하고 있다. 고의4구를 던지다가도 여러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던지지 않는 고의4구는 안된다고하는 야구인도 있지만 메이저리그는 경기시간 단축을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