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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논란, 또 논란. 스스로를 이슈 메이커로 수식한 봉준호 감독이 '옥자'를 둘러싼 제작부터 개봉까지 벌어진 일련의 모든 사태에 대해 속시원한 진심을 털어놨다.
비밀을 간직한 채 태어난 거대한 슈퍼 돼지 옥자와 강원도 산골에서 함께 자란 미자(안서현)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SF 어드벤처 영화 '옥자'(봉준호 감독, 케이트 스트리트 픽처 컴퍼니·루이스 픽처스·플랜 B 엔터테인먼트 제작). 지난 12일 열린 언론·배급 시사회에 이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당주동 포시즌스 호텔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내한 기자간담회를 열어 '옥자'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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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틸다 스윈튼은 '옥자'로 내한한 소감에 대해 "고향에 온 기분이다. 아름다운 '옥자'를 한국, 고향에 데려온 기분인 셈이다. 우리는 모두 한국 영화인이라는 마음을 가졌다. 한국에 돌아와 고향에 전달하게 돼 기쁘다. 특히 봉준호 감독과 함께해 감사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스티븐 연은 "이 자리에 오게된 것이 영광이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내가 태어난 국가에서 영화인으로 돌아오고, 게다가 훌륭한 크루들과 함께해 기쁘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며 꿈이 실현됐다"며 말했고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는 "특히 '옥자'로 한국에 오게 돼 기쁘다. 보편적인 가치를 다룬 영화며 봉준호 감독의 영화라 더욱 특별하다. 함께하게 돼 너무 감사하다"며, 다니엘 헨셜은 "한국이란 문화에, 따뜻한 환대를 받게 돼 너무 기쁘다. 여러분께 '옥자'를 고향에 데려와 기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국 스타를 대표한 변희봉은 "시간이 좀 빠른 것 같다. 세상을 살다보면 별의 별 일이 다 생기는 것 같다. 변희봉이란 사람이 칸영화제에 가보고 별들의 잔치를 경험해보고 왔다. 정말 고맙고, 감사할따름이다. 이번에 칸에 가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고 돌아왔다. 칸에서 한 이야기 중 70도 기운 고목나무에서 꽃이 핀 기분이라고 했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세상에 이런일이 있을 수 있나? 고목나무에서 손끝만큼 옴이 터올르더라. 70도 기운 고목나무가 60도쯤 오른것 같다. 고맙고 감사하다"고 의미깊은 소감을 밝혔다. 안서현은 "칸영화제는 모든 배우들이 쉽게 갈 수 없는 자리라고 알고 있다. 훌륭한 배우, 감독과 같이 손을 잡고 그 길을 걸었다는 것이 너무 영광스럽고 행복했다. 앞으로 연기하면서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된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옥자'가 개봉할 때까지, 그리고 끝날 때까지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뜻깊은 소회를 전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보고 난 뒤 이야기라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다. 칸, 유럽 등 계속 시사회 및 인터뷰를 가지고 있는데 한국까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제 한국 스태프도 다시 만났고 뉴욕에서는 뉴욕에서 일한 스태프들도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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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타깝게도 봉준호 감독의 바람은 국내 멀티플렉스들의 반발로 좌절됐다. 영화계 산업 질서를 붕괴한다는 명목하에 넷플릭스와 '옥자'의 극장-스트리밍 동시 개봉을 반대하고 나선 것. 기존의 영화 산업 구조에서는 선(先) 극장 개봉 이후 홀드백(개봉 3주 후) 기간을 거쳐 IPTV 서비스를 진행해왔지만 '옥자'가 이런 관행을 깨고 극장과 스트리밍을 동시에 개봉하겠다 선언해 문제가 됐다. 칸영화제 역시 프랑스 내 극장 개봉을 하지 않는 '옥자'를 두고 논란이 불거졌는데 칸에 이어 국내까지도 극장 측과 대립하며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옥자'는 보이콧을 선언한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전국 6개 권역, 7개 소극장과 협의해 상영을 결정했고 이후 전국 100여개의 소극장과 상영을 논의 중이다.
봉준호 감독은 "가는 곳마다 논란을 만드는 것 같다. 칸에서도 이후 영화제 규칙이 생겼다. 우리 영화로 인해 변화가 생긴 것 같아 그것도 대단하다. 칸영화제는 미리 규칙을 정리하고 초청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우리를 초청한 뒤 논란을 만들어 당황스러웠다. 프랑스 내부적으로 법을 정리하고 우리를 불렀다면 좋았을 텐데 법도 정하지 않고 우리를 불렀다. 사람 불러놓고 민망하게 왜 그랬나 모르겠다. 영화제라는 것이 늘 이슈와 논란이 필요하지 않나. 우리가 그런 역할을 만들어서 영화제 초반을 달굴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한국은 조금 다르다. 멀티플렉스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반면 넷플릭스는 극장과 스트리밍을 동시에 하는 원칙이 있다. '옥자'는 넷플릭스의 회비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극장 관객을 위해 조금 기다려 달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나의 영화적인 욕심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다른 나라는 이런 논란이 없었다. 원인 제공자는 나다. 넷플릭스도 좋지만 극장에서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런 욕심에 진행을 했던 것인데 현실적이나 법적으로 명확한 선이 없다. 업계의 룰이 좀 더 세부적으로 다뤄질 것 같다. 룰이나 규칙이 전해지기 전 우리 영화가 먼저 도착한 것 같다. 우리가 신호탄이 된 것 같아 좋은 일인 것 같다. 나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나 때문에 피로해진 업계의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다행스럽게도 대형 극장은 아니지만 좋은 극장에서 상영을 허락해줬다. 한동안 잠시 잊고 지냈던 극장을 찾아볼 기회도 된 것 같다. 지금 상황은 굉장히 만족스럽다. 작지만 길게 만났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이어 그는 "문화적인 경계를 넘어보고 싶다거나 다양한 문화를 섞어보고 싶은 의도는 아니었다. 그냥 단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설국열차' 때는 인류의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는데 남한과 북한만 있으면 이상하지 않나? '옥자'도 다국적 거대 기업이 많은데 그런 기업에 관한 이야기며 아시아 깊은 산속의 소녀와 거대 기업의 CEO가 만나 펼치는 이야기다. 문화적 철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게 가장 우선은 내가 찍고 싶은 스토리다. 다른 어려운 점은 없다. 예전 한국어 대사 영화를 할 때도 미국 팀과 같이 호흡을 맞췄고 일본영화 때도 일본 스태프와 일을 했다. 자연스럽게 작업 방식은 적응이 됐다. 내 주변에 좋은 통역가들이 많다. 언어는 큰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같은 한국말을 하는 배우일지라도 뜻이 통하지 않으면 힘들다. 이미 전 세계는 국경이 붕괴된 상태다. 다양한 문화가 충돌하고 있고 뒤섞여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변희봉은 "봉준호 감독과 함께한 작품만 네 작품이다. 책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은 늘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작품에도 그냥 흘러가는 법이 없다. 그 메시지의 매력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봉준호 감독은 이번 칸영화제에 가서 봉준호 감독의 위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왔다. 오랜 연기 생활을 해왔지만 기립박수를 흔히 보지 못했다. 그 큰 극장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기립박수를 치는데 5분간 시계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카메라가 내게 오는 것이다. 얼른 시계에서 눈을 떼고 앞을 보는 척 했다. 그럼에도 계속 박수가 나왔다. 봉준호 감독의 외모에 정다운 미소나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배우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옥자는 곧 봉준호였다"고 재치를 발휘해 장내를 웃음짓게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은 마지막으로 "논란을 끝내고 '옥자'를 즐겨줬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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