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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9일 홍콩 로봇 제조사 핸슨 로보틱스가 제작한 휴머노이드(Humanoid, 인간형 로봇) '소피아'가 방한했다. 교육, 의료, 고객 서비스 등 사람과 상호작용을 목적으로 인공지능(AI)을 탑재한 '소피아'는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로봇 최초로 시민권을 획득하기도 했다.
피부도 사람과 비슷하고, 행동 양식도 사람과 비슷한 느낌을 주도록 개발된 '소피아'를 본 사람 중에는 기술 발전에 놀란 사람도 있지만, 어딘가 '불쾌한 느낌'을 가진 사람도 적잖이 있었다. 이렇게 사람과 닮은 무언가에 '불쾌한 느낌'을 받는 이유를 일본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森政弘) 박사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고 설명했다.
설명에 따르면 로봇이 사람과 유사한 형태를 가질수록 그에 대한 호감도는 점차 증가하지만, 60~70% 정도 유사함을 보이면 강한 거부감이 발생한다. 하지만 로봇이 가진 외모나 행동 양식이 사람과 구별하지 못할 정도에 이르면 호감도도 함께 증가해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을 비슷하게 느끼게 된다. 이때 '사람과 비슷한 로봇'과 '사람과 구별 불가능한 로봇' 사이에 존재하는 '불쾌한 느낌' 영역을 '불쾌한 골짜기'라 한다.
'불쾌한 골짜기'는 로봇뿐만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에서도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2004년 개봉한 3D 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는 실제 배우 몸에 센서를 붙여 3D 렌더링을 통해 캐릭터를 만드는 모션 캡처 방식으로 제작됐는데, 사람과 미묘하게 닮았지만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가진 캐릭터에 극장을 찾은 어린이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가 발생했다.
3D 게임을 제작하는 개발사 입장에서는 '불쾌한 골짜기'가 골칫거리 중 하나다. 사람과 비슷한 3D 캐릭터 모델은 게임 자체에 호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어설프게 닮은 모습은 오히려 게임 자체에 반감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제 3D 그래픽은 현실과 흡사하게 구현할 수 있지만, '불쾌한 골짜기'를 해소할 방법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언리얼 엔진 개발사 에픽게임즈는 3월 열린 전 세계 최대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GDC(Game Developers Conference) 2018'에서 실시간 모션 캡처 기술을 사용한 '디지털 휴먼(Digital Human)'을 공개했다. 실제 배우가 캡처 장비를 착용하고 연기하는 표정과 몸짓,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재연한 '디지털 휴먼'은 '사이렌(Siren)'과 '앤디 서키스(Andy Serkis)' 두 종류였다.
에픽게임즈 코리아는 4월 18일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서도 '사이렌'과 '앤디 서키스'를 소개했다. 그중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 '혹성탈출: 종의 전쟁'에서 각각 '골룸', '시저' 역을 맡은 배우 '앤디 서키스'가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Macbeth)' 대사를 연기하는 모습을 담은 '디지털 휴먼'은 실제와 같은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사람과 비교해 큰 이질감을 느낄 수 없는 모습을 보였다.
'디지털 휴먼'이 연기한 모습을 그대로 다른 가상 캐릭터로 옮긴 모습도 함께 공개됐는데, 생김새가 전혀 다른 캐릭터도 실제 존재하는 모습처럼 표현됐다. 이에 대해 에픽게임즈 코리아 신광섭 차장은 "3D 렌더링 캐릭터가 연기할 때는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디지털 휴먼'은 사람과 구별하기 어려운 퀄리티로 표현돼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섰다"며 "'디지털 휴먼'은 수정 없이 다른 캐릭터에 그대로 입힐 수 있으므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리라 기대된다"고 말했다.
사람과 구별할 수 없는 모습으로 '불쾌한 골짜기'를 벗어나려는 '디지털 휴먼'은 차후 인공지능이 적용되면 여러 콘텐츠로 활용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게임은 물론 SNS,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MR(혼합현실) 등 사람과 직접 상호 작용하는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에 적용돼 현실과 구별 불가능한 가상 세계를 만들 수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3D 그래픽이 발전하면서 배경이나 환경 묘사는 사실과 가상을 구별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사람 표현은 '불쾌한 골짜기'를 벗어나기 어려웠다"며 "에픽게임즈가 선보인 '디지털 휴먼'은 '불쾌한 골짜기'를 벗어나려는 기술로, 향후 현실과 구별하기 힘든 가상 세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리라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림 텐더 / 글 박해수 겜툰기자(gamtoon@gamt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