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하는 소리와 함께 김영권(27·광저우 헝다)이 쓰러졌다. 지난해 9월 일이다.
|
|
김영권은 밝고 굳센 남자다.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도 무너지지 않았다. 숱한 경쟁에서도 버텨온 김영권이지만 이번엔 약해졌다. "이런 큰 부상은 해본적이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나 싶기도 하더라."
한데 새로운 경험을 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던 어느 날. 재활 후 귀가한 김영권의 품에 멀리서 달려온 딸이 쏙 안긴다. "아빠!" 그 모습을 아내가 웃으며 지켜본다. "내가 지켜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존재들, 알고보니 내 버팀목이었다. 부담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그렇게 편하고 고맙기만 하더라."
|
김영권은 중국에서 '외국인선수'다. 고액 연봉과 수당이 있는 인생. 겉만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외국인선수의 본질은 '용병'이다. 돈 값을 해야 살아남는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다른 건 필요없다. 잘 해야 산다. "중국 무대가 팽창할수록 중압감이 있다. 나는 말 그대로 용병이다. 보여주지 못하면 그 길로 끝이다. 지금도 수많은 세계적 스타들이 중국으로 온다. 그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담담한 목소리다. 그래서 더 와 닿는다. "모든 외국인선수의 삶이 그렇다. 밖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내 앞에 펼쳐진 건 생존을 향한 전장이다."
프로의 삶은 증명의 연속이다. 보여주고 또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온 김영권, 또 다른 시험대에 직면했다. 바로 슈퍼리그 외국인선수 규정 개정안이다. 5명 보유 5명 출전에서 5명 보유 3명 출전으로 바뀌었다. 아시아쿼터도 사라졌다. "재활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들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구단도 적잖이 놀랐던 것 같다."
|
|
A대표팀의 위기와 함께 '중국화 논란'도 고개를 들었다. 수준 낮은 중국에서 뛰기에 실력이 떨어졌다는 주장이다. 김영권은 큰 죄라도 지은 듯 하다. 중국에서 뛰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원죄'다. "솔직히 기회가 와서 열심히 뛰었던 것 밖에 없는데…."
민감한 사안이다. 잠시 숨을 고른 김영권은 "많은 분들께서 하신 말씀이기에 애써 부정은 하지 않겠다"면서도 "하지만 꼭 알아주셨으면 하는 게 있다. 중국에 있는 모든 한국인 선수들은 죽을 힘을 다 해 뛴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일터가 있다.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며 살아간다"며 "지금 내 터전은 중국이고 나는 축구선수다. 그것도 외국인선수다. 진짜 살아남기 위해 피눈물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부상, 중국화 논란, 외국인선수 제한 규정.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던 날벼락이다. 김영권은 속으로 '모두 내 탓이겠거니' 했다.
|
다시 돌아왔다. 9개월 만이다. 무대는 6월 21일 허베이와의 FA컵 16강전. 이후 서서히 출전을 늘렸다. 지난 1일엔 광저우 부리와의 FA컵 8강 2차전에 선발로 나서 풀타임 활약을 펼치며 7대2 대승에 일조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아픔을 이겨내고 김영권은 다시 태어났다. "새삼 다시 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즐겁다. 웅크렸던 시간을 뒤로 하고 이제 '선수' 김영권의 모습을 되찾겠다."
중국 최강 광저우 헝다에 돌아온 김영권. 다시 찾고 싶은 게 한 가지 더 있다. A대표팀이다. 김영권은 "A대표팀은 최고의 선수들만 선택받을 수 있는 곳"이라며 "모든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꿈꾼다. 나도 그렇다"고 말했다.
신태용 A대표팀 감독은 5일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파의 경기력을 점검한다. 김영권은 "기회가 온다면 최선을 다해 내 경쟁력을 보일 것"이라며 "대표팀이 위기에 처했는데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온몸을 던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