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을 비기고 아홉 번을 패한 뒤 드디어 이겼다. 8월 중순 리그 개막 후 120일이 지났고, 12-13시즌이 42%나 진행된 뒤였지만, '강등권 탈출'에 대한 희망의 불씨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다만 그 자리에 캡틴 박지성이 없었던 것이 QPR 첫 승의 유일한 흠이자, 씁쓸한 대목이었다. 승리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면서도 '박지성이 돌아오면 어느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비판의 눈초리로 경기를 바라본 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본 전형으로 회귀한 QPR, 에이스로 떠오르는 타랍.
레드납 감독은 중원 자원들을 역삼각형 모양으로 배치해 선더랜드전, 애스턴 빌라전, 그리고 위건전까지 3경기를 치렀다. 그 과정에서 거둔 성적은 3무, 3득점 3실점. 그리고 지난 풀럼전에서는 다시 중앙에 파울린-음비아 두 명의 자원을 배치하고, 윙어 자원 세 명을 1.5선에 투입하며 마크 휴즈 감독 당시 정삼각형 모양의 전형으로 회귀했다. 그리고 최전방에는 두 경기 연속 활용하던 마키 대신 정통 스트라이커를 시세를 선발로 내세웠다.
이 속에서 확실히 떠오른 건 타랍이었다. 위건전에서 1도움을 기록한 타랍은 풀럼전에서는 행운성 골 포함 2골을 작렬했다. 결과만 좋았던 게 아니다. 공격이 진행될 때 대부분의 패스가 원톱 아래 배치된 이 선수의 발을 거쳐 갈 정도였다. 일단 강등권 탈출을 목표로 중하위권 이하 팀들과의 일전에서 착실히 승점을 쌓아야 하는 QPR 입장에선 가장 믿음직한 카드일지도 모른다. 연계 플레이에 의한 부분 전술이 들어맞는다는 보장이 없을 땐, 차라리 골문 정면에서 수비수 2~3명을 앞에 둔 채 중거리 슈팅을 난사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음을 골로써 증명해 보이고 있으며, 패스 타이밍을 잡는 템포도 기존에 비해 상당히 빨라졌다.
박지성의 이탈, 경쟁 포지션의 현 상황은
부상에서 돌아와 출장 시간을 늘려가던 차에 또다시 팀에서 이탈했다. 2~3주 결장이 예상돼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애가 탄다. 관건은 '어느 정도의 폼'까지 회복해서 돌아오느냐는 것. 다만 윙어의 스피드를 즐겨 활용하던 레드납 감독 특성상, '스피드를 이용한 측면 돌파에 수비수를 휘저으며 마무리 슈팅까지 가져갈 수 있느냐'는 잣대를 들이밀었을 때, 타랍, 마키, 숀 라잇 필립스와의 비교에서 우위에 선다는 보장은 없다. 또, 최전방에 배치돼 제로톱의 방안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높아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면 중원은 어떨까. 레드납 감독 부임 후 4경기 연속 선발 출장한 음비아는 상대 공격을 잘라내는 데 재능을 보였고, 이후 공격으로 전환하는 패스에서도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이 파트너로는 볼을 소유하면서 경기를 조율함과 동시에, 조금 더 정교하고 정확한 패스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그라네로나 파울린 둘 중 하나가 선택되어 왔다. 음비아-디아키테를 내세웠던 위건전에서는 그 밑에 숀 데리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했는데, 이마저도 후반 중반에는 그라네로를 넣어 변화를 주곤 했다. 투박함 속 조율을 가미하고, 연계 플레이에서도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늘 위기와 함께 해 온 남자, 따뜻한 시선이 필요.
새로운 판을 짜는 과정 중 명단에서 빠졌다. 한 번 완성한 베스트 라인업을 그대로 밀고 나가곤 했던 레드납 감독의 지휘 아래 팀은 첫 승을 거두었다. 동양인 최초 EPL 주장 완장을 차면서 'QPR의 박지성'이 아닌 '박지성의 QPR'이란 수식 어구가 더 어울렸던 시즌 초반과 비교했을 때, 현 상황은 썩 좋지 못하다. 위기라면 위기인 형국이다. 2~3명을 활용하는 중원에 박지성을 빼고도 5명의 자원이 버티고 있으며, 이들은 레드납 감독의 실험 과정 속에 발을 맞춰가고 있다.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박지성이 남겨온 발자취 중 '위기 아니었던 때'가 있었나 싶다. 처음 맨유 유니폼을 입고 EPL 무대를 밟았을 때, 몸집이 월등하게 컸던 유럽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 튕겨 나가며 '피지컬 지적'을 받기 일쑤였고,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늘어날 땐 '벤치성'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치열한 세계 속에서 그는 생존 방식을 터득해나갔고, 맨유의 일원이 된 것만으로도 대단하거늘 그곳에서 알렉스 퍼거슨이라는 세계적 명장과 무려 7년을 함께 하는 영광을 누렸다. '위기설'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던 중에도 EPL 우승컵을 총 네 번이나 들어 올렸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컵까지 품었다.
노래 가사 마냥 '머물러 있는 줄로만 알았던 박지성의 청춘'도 점점 더 멀어져 간다. 1981년생으로 해가 바뀌면 한국 나이로 서른셋. 적잖은 사람들이 세월 앞에 장사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박지성만큼은 '시간을 거스르는 자'로 여기는 듯한데, 이젠 부상 회복의 속도도 한창 때보다 훨씬 더딜 것이며 예전의 폼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되도 않는 동정론의 양산이 아니라, '산소탱크'의 축구 인생도 황혼기를 향해 달려가는 게 현실이다. 무작정 낙관하기는 힘드나, 새로이 택한 행선지 QPR에서도 박지성이 할 일은 분명히 있을 것. 조금만 더 따뜻한 시선으로 이 선수를 지켜보자.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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