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좋은 웃음을 짓다가도 코트 안에 들어서면 호랑이가 된다. 양복 셔츠를 벗어 던지는 것은 예사다. 경기 내내 굵은 땀을 줄줄 흘리면서 목이 쉴 때까지 소리를 지른다. 스스럼 없이 감정을 표현하면서 이따금 익살스런 포즈로 관중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여자 핸드볼 SK 슈가글라이더즈의 사령탑인 김운학 감독(50) 이야기다.
27일 대구체육관에서 열린 경남개발공사와의 2013년 SK핸드볼코리아리그 1라운드에서 만난 김 감독은 딴판이었다. 코트를 바라보는 표정은 어딘가 숙연했다. 때때로 넋이 나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날 경기 직전 김 감독은 모친상을 당했다. 향년 78세. 지병으로 천수를 누리지 못한 채 임종한 어머니 곁에 있지 못했다. 불효의 마음이 가슴을 후벼팠다. 당장 빈소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잠시 접어뒀다. 결전을 앞둔 제자들을 나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평소 '은갈치 양복'을 즐겨 입던 김 감독은 이날 검은 양복과 검은 넥타이에 근조 리본을 달고 벤치를 지켰다.
경기 전 선수단 훈련 시간, 김 감독의 자리는 벤치가 아닌 경기장 구석이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묵묵히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 볼 뿐이었다. "어르신들은 연세가 많아지시면 누구나 지병이 있지 않으신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희미하게 짓는 미소는 공허한 그의 마음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코치들은 "우리나 선수들 모두 경기 직전 갑자기 소식을 접했다. 오랜 기간 투병하셨다고 들었을 뿐"이라며 숙연해 했다.
김 감독은 승부에 최선을 다 했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는 작전타임으로 맥을 끊었고, 이따금 선수들에게 다가가 치밀하게 작전을 지시했다. 승부사 기질은 이날도 유감없이 발휘가 됐다. SK는 이날 경남개발공사에 한 수 위의 기량을 과시하면서 31대23, 8골차 승리를 거뒀다. 이날 승리로 SK는 여자부 2위에 올라섰다.
경기 종료 후 김 감독은 서둘러 떠날 채비를 했다. 경기 내내 담담하게 팀을 이끌었던 김 감독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상주인데 빈소도 못 지키고 있었다. 이제는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하지 않겠나." 빈소 대신 코트를 지킨 김 감독에겐 경남개발공사전 승리가 어머니께 바친 마지막 사모곡이었다.
대구=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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