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오늘 경기 절대 안집니다. 제가 한번 극복해보겠습니다. 노여움 푸시고요."
'백전노장 골키퍼' 김병지가 하석주 전남 감독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7일 오후 춘천종합경기장에서 펼쳐진 강원과의 5라운드, 전남은 그라운드에 들어선 지 2분만에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수비수 홍진기가 문전 쇄도하던 웨슬리에게 손을 썼다는 판정이다. 강원전은 절실했다. 4라운드까지 강원은 2무2패로 13위, 전남은 1무3패로 최하위 14위에 랭크됐다. 첫승이 절실했던 '탈꼴찌 전쟁'에서 초장부터 청천벽력이었다. 직전 경기 포항전에서도 PK를 허용했던 터였다. 선수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물러설 수 없었다. 하 감독은 격럴하게 항의했다. 주심의 즉각 퇴장 명령에도 벤치에서 버티던 하 감독을 향해 43세의 골키퍼 김병지가 다급하게 달려갔다. "감독님, 제가 한번 극복해 보겠습니다." 김병지의 비장한 한마디에 버티던 하 감독이 발길을 돌렸다. 김병지는 그라운드에 들어서 전남선수단을 불러모았다. 흥분한 선수들을 다독이고, 흔들린 마음을 하나로 묶어냈다. '경기지연'을 이유로 옐로카드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유익했다. 골문 앞에 우뚝 선 '병지삼촌' 김병지는 감독과의 약속을 지켰다. 지난해 8개의 PK에서 100% 성공률을 자랑한 '백발백중' 김은중(강원)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왼쪽을 노려찬 김은중의 킥의 방향을 이미 읽었다. 발을 쭉 뻗어 볼을 차냈다. 4라운드 포항전에서 황진성의 PK를 막아낸 데 이어 2연속 선방에 성공했다.
'병지삼촌'의 미친 존재감은 이날 그라운드 곳곳에서 빛났다. 성난 감독을 조기에 설득해 더 큰 파국을 막았고, 어린 선수들을 하나로 묶어냈고, 몸소 PK를 막아냈다. 위기를 극복했다. 강원의 외국인 콤비 지쿠-웨슬리의 날선 위협 앞에서도 당당히 버텼다. 전반 34분, 35분 잇달아 불꽃같은 선방쇼를 펼쳤다. 웨슬리와 1대1 상황에서 거침없이 몸을 던졌다. 최후방 노장의 투혼은 어린 후배들을 똘똘 뭉치게 했다.
후반 6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배효성에게 선제 헤딩골을 허용한 후에도 전남은 포기하지 않았다. '병지삼촌'의 선방에 23세 이하 '토종 공격듀오'가 화답했다. 후반 40분, 전현철의 슈팅이 골대를 튕겨나오자, 이종호가 쇄도하며 동점골을 밀어넣었다. 첫승은 또 한번 미뤘지만, 비기고도 이긴 듯한 뿌듯함이 있었다.
하 감독은 "경기 후 라커룸에서 감독으로서 경솔하게 퇴장을 받아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고 했다. "결국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선수들의 몫이다. 선수들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지난해에는 선제골을 허용하면 무기력하게 지는 경우가 많았다. 올시즌 5경기 중 2경기에서 선제골을 허용한 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렸다. 팀이 끈끈해지고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감독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메워준 베테랑 골키퍼에게 공을 돌렸다. "내 퇴장 이후 김병지의 PK 선방이 팀을 끈끈하게 묶어낸 것같다. 경험 많은 '베테랑' 고참의 역할은 결국 이런 것"이라며 웃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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