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구입한 후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거의 없다. 문제가 심각할수록, 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업체라면 더 그렇다. 문제를 제기해봐야 '원인을 밝힐 수 없다면 차에는 문제가 없다'라는 답만 돌아온다.
차량의 이상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이상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식이다. 자동차의 이상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제조사의 책임'이 아닌 '소비자의 몫'이란 이상한 논리다. 적게는 1천여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억원을 호가하는 물품이지만 소비자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동차 구매가 로또? 억울한 소비자들
2012년 11월 말 포드의 토러스를 구입한 이상학씨. 그는 차량 구입 3개월 만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올해 2월 1일 경기도 부천 인근 도로 앞에 세워둔 차의 시동을 걸자 엔진룸 부분에서 '퍽'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화재를 눈치 챈 이씨는 급히 차에서 내렸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에 의해 불길이 잡혀 추가 피해는 막았지만 엔진룸 전체가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다.
부천 원미경찰서는 차량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조사를 의뢰지만 명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 다만 감정서에는 '엔진 내부 전면의 연소 유실로 화재원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기 어려우나 차량자체의 요인에 의해 발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화재 당시 유사석유로 화재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국과수는 유사석유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확실한 결론을 내렸다. 이씨는 포드코리아 측에 차체 결함 가능성을 언급하며 차량 교환을 요구했다. 그는 "구입 3개월 만에 차 엔진에 화재가 발생한 것에 대해 포드코리아에 항의했고, 신차 교환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엔진룸이 모두 타버려 운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게 이씨의 항변이다.
그런데 포드코리아는 이씨에게 차제 결함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했다. 한 술 더 떠 문제를 제기하고 싶으면 해외 본사와 직접 문제를 해결하라는 답변도 내놓았다. 이씨는 "국과수도 찾아 내지 못한 원인을 소비자가 직접 찾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며 "새 차를 구입했는데 차량 이상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아니냐"며 하소연했다. 그는 특히 "화재 이후 자동차는 탈 수 없게 됐다"며 "몇십만원이 아닌 3700여만원의 거금을 들여 새 차를 샀는데 한순간에 허공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포드코리아 관계자는 "차량에 이상이 발견되면 메뉴얼에 따르 업무처리를 하고 있다"며 "(이씨의) 상황은 안타깝지만 차의 이상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응을 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타타대우상용차에서 프리마25톤 카고 트럭을 구입한 차상태씨도 이씨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차씨는 2012년 12월 27일 25톤 트럭을 구입한 직후 차량과 적재함의 심한 떨림 현상을 경험했다. 화물을 실어 나르는 차량인 만큼 적재함의 떨림 현상 등은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또 2단키에서 시동이 걸리는 아찔한 사건도 겪었다. 25톤 트럭의 경우 자동차 키는 1단(라디오만 들을 수 있는 상태), 2단(시동을 제외한 차량의 전원 공급), 3단(시동)으로 나뉜다.
장거리 운행이 많은 차량인 만큼 운행 전 엔진점검을 위해선 2단키에 놓고 운전석을 들어 올린 뒤 점검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만약 차량 점검 중 갑자기 시동이 걸리게 되면 엄청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차씨는 구입 후 이 같은 문제점을 내세우며 타타대우상용차 서비스센터를 찾았지만 특별한 조치를 받지 못했다. 타타대우상용차 서비스센터 직원이 직접 트럭에 탑승하는 등 테스트를 했지만 차체가 떨리고 적재함이 흔들리는 점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과 2단키 시동 문제에 대해선 키스위치를 고쳤으니 문제가 없다는 게 이유다.
차씨는 문제가 없다는 타타대우상용차의 정비결과를 인정할 수 없어 직접 사비를 들여 다른 차량정비업체로부터 테스트를 받아 '고갯길에서 RPM 1400~1600사이 갈지자로 엉덩이(적재함)가 떨림'이라는 소견을 받았지만 타타대우상용차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차씨의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타타대우상용차는 차씨에게 '차량에 문제가 없으니 운행을 해도 된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명확한 원인 규명이 되지 않는 한 제조사 입장에선 자칫 차량 결함으로 사안이 확대 되거나 차체 결함을 인정하는 듯 비춰질 수 있는 점을 막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차량 이상에 울고, 고객 대응에 두 번 울고
수천만원의 목돈을 들여 새 차를 구입하는 이유는 차량의 이상이 없을 것이란 믿음이 바탕이 된다.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차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무료로 A/S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한몫 거든다.
새 차를 구입했는데 차량 이상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 문제다. 차량에 원인을 밝히기 어려운 이상이 발생했을 경우 '원인이 밝힐 수 없다면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다'는 입장보다 원인 모를 이상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차를 판매할 대는 간도 빼줄 듯 고객을 현혹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한발 물러서는 듯 한 대응을 보이는 수입차 업계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자동차업계 관리 당국의 관리감독이 필요할 때다.
[소비자인사이트/스포츠조선]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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