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시나리오가 된 거지, 뭐."
올 시즌 다시 현직으로 복귀한 한화 김응용 감독의 안색이 마치 장맛비가 퍼붓는 대전구장 위의 하늘처럼 어둡게 물들었다. 지난 17일에 열린 제10구단 KT의 신인 우선지명 결과가 한화의 입장에서는 매우 안좋게 나왔기 때문이다. 이날 KT는 고교 랭킹 수위를 다투는 개성고 좌완투수 심재민에 이어 한화의 지역연고 1차 지명 유력선수였던 천안 북일고 우완 에이스 유희운마저 낙점했다.
이로 인해 18일 장맛비가 내리는 대전구장 덕아웃에 나온 김 감독은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뜩이나 올해 한화의 성적도 최악이라 심기가 불편한데, 팀의 미래를 책임질 신인 지명도 노감독의 뜻대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신인 우선지명결과가 나온 지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대뜸 (한화 쪽에)최악의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 KT가 심재민이도 데려간데다 천안 북일고의 유희운도 영입해버렸으니 그럴 수 밖에…" 지역 연고지의 최대 유망주를 빼앗긴 김 감독은 비가 퍼붓는 텅빈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김 감독 개인의 입장에서는 이번 우선지명 결과로 인해 한 가지 얻은 게 있다. 엉뚱하게 받은 오해를 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인터넷 매체를 통해 김 감독이 부산 개성고의 후배인 심재민과 미리 접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 감독이 심재민 측에게 한화에서 영입할테니 어깨를 아끼라는 식으로 얘기했다는 것. 김 감독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결과적으로 KT가 심재민을 영입하면서 김 감독을 위시한 한화의 사전접촉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결론이 났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사전접촉)의혹은 해소된 것 아닌가"라며 허탈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장난치는 사람이 아니다. 순수한 마음에서 모교 후배들을 도와준 것이 무슨 사전접촉인가. 요즘 (모교인) 개성고가 꽤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심재민 말고도 다른 선수들에게 한 달에 50만원씩 지원해왔다". 수 십 년간 프로야구계의 정점을 지켜온 노감독은 세간의 의혹이 몹시도 당혹스러운 듯 보였다.
사실 김 감독이 어린 아마추어 선수들을 개인적으로 지원해 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한 구단의 사장까지 지낸 김 감독은 누구보다도 야구계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 고교 유망주를 영입하기 위해 사전접촉을 한다는 식의 낮은 꼼수는 김 감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어쨌든 김 감독은 이번 우선지명 결과에 대해 뒷맛이 개운치 않다. 황당한 의혹이 풀어지긴 했어도 팀의 미래를 보면 최악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그래서 "이왕이면 (KT가) 충청도 지역말고 다른 선수를 데려갔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아쉬워하면서 "비로 경기가 취소됐으니 빨리 선수들 훈련이나 보러 가야겠다"고 자리를 떴다. 아쉬움에 빠져있기 보다는 어떻게든 현재의 한화를 좀 더 강하게 조련하는 게 훨씬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노감독은 잘 알고 있었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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