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웃지 않았다. 평소와는 달리 그 어떤 활력 넘치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배트를 놓은 채 묵묵히 베이스를 돌고 들어와 덕아웃으로 향했다. 홈런을 치고도 웃지 못하는 4번타자, KIA 나지완의 침묵 속에는 팀이 시즌 내내 반복적으로 겪어온 열악한 상황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나지완은 국내 타자 중 홈런을 친 뒤 제스추어가 가장 활기찬 선수다. 이로 인해 여러 구설이나 시비에도 휘말린 적이 많지만, 나지완이 일부러 상대방을 도발하려고 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저 순수하게 자신이 이뤄낸 성과와 그로인해 승리에 한발 더 가까워진 팀의 상황을 기뻐했을 뿐이다. 나지완 역시 제스추어가 다소 과하고,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경기 막판 역전이나 추격의 홈런이 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기쁨이 표출돼 나오곤 했다.
그랬던 나지완이 홈런을 치고도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8월의 마지막 날, 31일 광주구장에서 나지완은 NC를 상대로 9회말 2점 홈런을 날렸다. 보통 9회말에 터진 홈런은 끝내기가 아니라면 홈팀이 추격에 나섰다는 신호탄이다. 그만큼 짜릿한 순간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나지완은 묵묵히 베이스를 돌기만 했다. 기뻐하기에는 팀의 상황이 너무 좋지 못했고, 갈 길이 멀었기 때문.
사실 이 홈런은 NC를 향한 KIA의 치명타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앞서 9회초에 어이없이 대량실점을 하는 바람에 빛이 바라고 말았다. KIA는 8회말 김주형의 솔로홈런이 터지면서 1-4로 추격을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나지완의 2점포가 곁들여졌으면 3-4, 충분히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점수차가 될 뻔했다. 그런데 9회초에 등판한 손동욱이 2사 후 연속 볼넷 2개로 만루위기를 자초한 뒤 급하게 바뀐 투수 유동훈이 주자 일소 2루타를 맞아 1-7로 스코어가 벌어지고 말았다.
나지완의 2점 홈런은 그래서 더욱 아쉬운 것이다. 홈런을 치고 굳어버린 나지완의 표정에는 시즌 내내 반복된 KIA의 현실이 담겨있다. 추격의 실마리를 잡았는가 싶었는데, 불펜의 대량실점으로 그 기회를 날린다거나 투수진이 잘 막아줬는데 끝내 타선이 터지지 않았다. '투타 엇박자'가 결국 올해 KIA의 발목을 잡아버린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나지완의 홈런 페이스는 꽤 인정할 만한 가치를 갖고 있다. 이제 나지완은 3개의 홈런만 더 추가하면 '20홈런' 고지를 밟게 된다. 나지완 개인으로서는 2009년 이후 4년 만이고, 팀 차원에서도 2010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20홈런' 타자를 갖게되는 것이다. 그간 KIA에 사라졌던 슬러거가 다시 나타났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다만 나지완의 고군분투가 직접적으로 팀 승리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 되는 현실이 불편할 뿐이다. 나지완은 과연 언제쯤 홈런을 치고 다시 활짝 웃을 수 있을까. KIA의 투타가 불협화음이 아닌 조화를 이룰 때, 나지완의 활력 넘치는 모습도 다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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