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전설 이규승의 마장산책
예전엔 출마표가 극비문서였다.
마사회는 출마표가 작성되면 신문사와 예상지업체에만 비밀리에 배포했다. 출마표는 신문이나 예상지 발행 배포와 함께 공개됐다.
그 이전에 공개되면 부정경마꾼들이 기수들과 승부 조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승부조작할 수 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공개시간을 늦췄던 것이다.
실제로 출마표는 어디서인지 유출돼 부정경마꾼들 사이에서 거액에 거래가 이뤄졌다. 그리고 신문사에는 출마표를 얻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마사회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각사로 배포되는 출마표에 각각 비밀표시를 하고 직접 배달했다.
당시 신문사에서는 출마표가 애물단지였다.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입력하느라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다 오자 투성이여서 신문이 나오기만 하면 독자들의 항의사태가 벌어지기 일쑤였다. 기수나 출전마의 이름이 한칸씩 밀려 실리기도 하고 경주별 출마표가 통째로 바뀌어 실리는 경우도 발생할 정도였다.
이런 가운데 스포츠조선이 100% 컴퓨터 제작으로 창간됐다. 그게 1990년 3월21일이다.
창간 준비를 하는 과정에 마사회 전산실장이 출마표에 대한 편리한 제작방법을 귀띔해줬다. 출마표를 모뎀으로 받아 신문에 게재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즉각 스포츠조선 전산실과 협의해 추진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 생각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마사회 고위층에서 모뎀 제공의 '불가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당시 마사회는 회장과 임원진이 군 출신들이었고 간부진 가운데에도 군 출신이 상당수 있었다. 이들 사이에 "모뎀이란 출마표가 전화선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도청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군에서는 전화에 대한 통신 감청을 방지하기 위해 전화를 받을 때 "통신보안 ○○○입니다"라고 관등성명 앞에 '통신보안'을 붙일 정도였기에 군 출신 간부와 임원들이 강력 반대하고 나설만 했다.
필자와 전산실장은 컴퓨터를 잘 모르는 그들에게 모뎀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느라 진땀을 뺀 끝에 어렵사리 설득, 출마표의 전산화가 이뤄졌다.
그러나 정작 창간하고 나니 문제는 또 발생했다. 모뎀으로 분명히 받았는데 출력이 안 되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이 지금처럼 완벽한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다하다 안 되면 마사회 전산실로 달려가 디스켓에 복사해다 출력해 싣기도 했다.
매주 출마표가 나오는 날은 밤늦게까지 이 일에 매달려야 했고 마사회 담당자인 이모 계장(지금의 과장급)도 출력이 이뤄질 때까지 야간대기했다.
그렇게 3개월 가량 고생한 끝에 출마표의 전산화가 이뤄졌다. 수작업하던 경쟁사와 달리 오자 없는 출마표를 단독 게재하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그 뒤 마사회 전산실장은 요직을 두루 거친 뒤 이사까지 지냈고, 이 계장은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돼 갔다. <전 스포츠조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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