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변수가 많다. 가정이 난무하지만 사실 큰 의미는 없다.
한국시리즈 6차전 9회초 2사 후 SK 최 정에게 동점 홈런을 허용한 두산 투수 린드블롬의 변화구가 스트라이크 존 아래로 떨어졌더라면, ADT캡스 챔피언십 박유나의 연장 첫번째 홀 버디 퍼트가 조금만 왼쪽으로 향했다면….
복기해보면 결국 중요한 결과를 가르는 건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다. 그런 면에서 스포츠는 인생을 꽤 많이 닮았다. 작은 차이가 챔피언을 바꾼다. 이긴 자는 모든 걸 차지한다. 승패란 아주 작은 차이가 만든 결과라는 점에서 때론 승자 독식이 조금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무튼 시즌 마지막 대회에서 박유나(31)는 패자였다. 두번째 연장 승부 끝에 박민지에게 우승컵을 내줬다. 하지만 변함 없는 게 하나 있었다. 그의 얼굴에 마치 문신처럼 새겨진 듯 따라 다니던 환한 미소였다. 정규 홀에서 선두 다툼을 하는 동안, 연장 승부에서 샷을 하고 난 뒤, 퍼팅을 아슬아슬하게 놓치고 아쉬워한 뒤에도 그는 변함 없이 웃었다. 경쟁자 박민지가 우승을 확정짓고 환호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억지 미소가 아니었다. 진짜 좋아하는 일을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긍정적 기운을 머금은 미소였다.
박유나는 K-10클럽 가입을 앞둔 10년 차 선수다.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쳐 프로에 입문했다. 부드럽고 아크가 큰 스윙으로 과거 장타대회 우승 경력이 있을 만큼 시원시원한 샷을 자랑한다. 그는 미소 만큼 밝은 선수다. 시합 때 밝은 옷을 즐겨입는 것도 그의 성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장 큰 무기는 긍정적 마인드다. 그는 "즐겁게 좋아하는 골프를 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박유나는 대회 2라운드까지 선두를 지키며 7년 만의 생애 두번째 우승에 한발짝 다가섰다. 즐겁게 몰입했고, 어느덧 선두까지 올라가 있었다. 당시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내년 시드 걱정도 없고 마지막 대회라서 즐겁게 치려고 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플레이 자체를 즐기고 집중해서 버디를 이렇게 많이 했는지 몰랐습니다."
사실 박유나의 올시즌은 썩 만족할 만 하지 않았다. ADT캡스 챔피언십 준우승 이전까지 톱10이 딱 한번 밖에 없었다. 제법 기복도 있었다. 시즌 막판에야 뒤늦게 페이스를 회복한 사실이 아쉽지 않을까.
"그런 마음도 있지만 그 보다는 1년 동안 고생해서 홀가분 합니다. 마지막 대회에서 이렇게 즐겁게 1년을 마무리 하는 것 같아서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생각 하는 긍정 마인드가 느껴진다.
정신 없이 달려온 10년 세월. 감회가 새롭다. "10년 동안 정규 투어에서 뛸 수 있을거라 생각도 못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10년이 훌쩍 지났네요. 마음을 내려놨던 것이 10년 동안 투어를 뛸 수 있었던 큰 이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운 좋게도 딱히 슬럼프 같은 게 없었기 때문에 버티면서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긍정론자 답게 그는 열린 미래를 이야기 했다.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 골프를 꾸준히 하고 싶을 뿐이죠. 살아 남는 순간까지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싸이도 노래하지 않았나. 인생 즐기는 이가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박유나의 내년을, 후년을, 그리고 남은 투어 생활을 응원한다. 끝까지 즐길 수 있기를. 환한 미소 속에 긍정적 마인드를 잃지 않는다면 또 한번 챔피언에 등극할 기회가 올 것이다. 과정이 다를 뿐 결과는 종이 한장 차이이므로….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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