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유화학이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다. 외부가 아닌 내부의 다툼이다. 박철완 금호석화 상무가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을 상대로 칼을 뽑았다. 10년 전 금호가에서 벌어졌던 '형제의 난'에 이은 '숙질(삼촌과 조카)의 난'이다. 박 상무가 경영 승계에서 배제된 게 발단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상무는 이달 말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실패로 끝날 경우 회사에서 발을 붙일 곳이 없을 것이란 점에서 공격 수위도 높이는 모습이다. 지난 1월부터 시작된 박 상무와 박 회장 간 경영권 분쟁은 이달 말 예정된 주총에서 일단락될 전망이다. 다만 오너일가 간 갈등이 대외적으로 노출이 된 만큼 주총 이후에도 경영권 다툼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영 승계 배제 발단, 개인 최대 주주의 분노"
금호석화의 경영권 분쟁은 예견됐던 일이다. 박철완 금호석화 상무는 지난 1월 27일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과 지분 공동 보유 및 특수 관계를 해소한다고 공시했다. 그동안 박 회장 그늘에 있었다며 홀로서기 입장을 공식화했다. 공시가 나온 직후 재계 안팎에선 경영권 분쟁을 우려했다. 재계는 지난해 5월 박 상무가 정기인사에서 승진을 못 했지만 박 회장의 장남인 당시 박준경 상무가 전무로 승진한 점에 주목했다. 경영권 승계에서 배제된 만큼 경영권 장악을 위한 박 회장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말이 나왔다. 두 사람은 사촌지간 동갑내기(1978년생)지만 서열로 보면 박 상무가 앞서 있다.
박 상무는 고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고 박정구 회장은 창업주 고 박인천 회장의 차남으로 박 회장의 형이다.
재계 관계자는 "금호가는 형제경영을 이어왔다"며 "5남인 박종구 초당대학교 총장은 일찌감치 교육계에 종사하며 경영 승계와 거리를 뒀던 만큼 금호석화의 경영 승계는 자연스레 자녀 간 서열에 따라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다"고 말했다. 형제 경영을 해왔던 금호가의 전통을 예상해온 박 상무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설명이다.
2000년 후반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 간 형제의 난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당시 박삼구 전 회장 이후 그룹 경영권을 박찬구 회장이 이어받는 수순이었으나 박 전 회장이 장남인 박세창 금호산업 사장에게 경영권을 넘기려고 시도했고, 이에 반발한 박찬구 회장은 박삼구 전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금호석화의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23일이다. 금호석화가 금호리조트를 인수한다고 밝힌 직후다. 금호리조트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회사로 경기도 용인의 36홀 회원제 골프장인 아시아나CC, 경남 통영마리나리조트 등 콘도 4곳과 중국 웨이하이 골프&리조트, 아산스파비스 등 워터파크 3곳을 보유하고 있다.
박 상무는 이날 금호리조트 인수 반대 의견과 함께 '총체적인 기업 체질 개선을 통한 사업 운영으로 2025년까지 시가총액 2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경영권 확보에 나선 공식적인 이유도 처음 공개했다.
박 상무는 "금호석화와 어떠한 사업적 연관성도 없으며, 회사의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금호리조트 인수를 반대한다"며 "회사의 투자 결정은 기존 사업과 연속성을 유지하며 시너지를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부채비율 400%에 달하는 금호리조트를 높은 가격에 인수하기로 한 것은 금호석화 이사회가 회사 가치와 주주의 이익을 훼손하는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지속성장이 가능한 기존사업과 시너지 강화하는 미래 성장동력 발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거버넌스 개선 및 이해관계자 소통, 장기적 관점의 ESG전략 수립과 위기관리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금호석화의 지분구조는 박 회장과 박 전무, 박 회장의 딸인 박주형 상무 등 오너가와 특별관계자 지분율은 14.87%다. 박 상무는 10.12%(4일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기타 주요 주주로는 국민연금(8.16%)이 있다.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본다면 박 상무는 금호석화의 개인 최대 주주지만 그룹 내 지배력에서는 박 회장에 뒤처져 있다. 주총에서 박 회장이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의 전망이다.
▶박 상무, 개인 홈페이지 개설 주주 설득 나서
그러나 박 상무가 경영권 장악에 실패할 경우 금호석화에 발을 디딜 수 없는 상황을 감안, 공격 수위를 지속해서 높이고 있다는 점은 변수로 꼽힌다. 친주주정책을 바탕으로 우호지분을 확보할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호석화는 소액주주의 지분율이 48.62%에 달한다. 주주의 표심 향방에 따라 경영권의 향방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박 상무도 이 같은 점에 주목, 지난 3일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제안'을 발표했다. 제안에는 친주주정책을 주로 담았다. 박 상무는 홈페이지를 통해 "금호석화는 우월한 수익 창출력을 보유했음에도 낮은 배당 성향과 과다한 자사주 보유 등 비친화적 주주정책으로 주주가치가 훼손됐다"며 "자사주 소각, 부실 자산 매각으로 재무 건전성을 회복하고, 전문성과 다양성을 고려한 이사진을 구성해 저평가된 회사의 가치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금호석화는 보통주 1500원, 우선주 1550원을 배당했는데 박 상무는 보통주 1만원, 우선주 1만1050원의 배당 확대를 제안했다. 앞서 금호석화에 제시한 주주제안서 내용을 구체화한 것이다.
금호석화는 "주주 제안을 명분으로 사전협의 없이 갑작스럽게 현재 경영진의 변경과 과다배당을 요구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박 상무는 지난달 25일 "문제 될 것이 없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주주제안 의안 상정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며 강력히 맞서고 있다.
금호석화는 박 상무의 제안을 바탕으로 최종 안건 상정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다만 법원의 의안 상정 가처분 소송 결과에 따라 상정 안건의 내용을 조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번주 중 이사회를 열고 주총 안건 상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추가적으로 검토를 거쳐 다음주에 이사회를 열 예정이다.
금호석화는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내용 및 안건 관련 내용의 언급은 피하고 있다. 주총을 앞두고 자칫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금호석화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선 특별히 언급할 만한 내용이 없다"며 "다음 주 중 이사회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재계 안팎에선 이달 말 주총 결과를 떠나 금호석화의 경영권 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오너일가의 갈등이 대외적으로 노출된 상황에서 향후 지분을 바탕으로 한 경영권 분쟁의 불씨는 여전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라며 "오너간 갈등 봉합이 금호석화 경영권 분쟁을 종식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