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가계대출이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섰다. 신용대출 급증세는 진정됐지만 치솟는 전셋값 등의 영향으로 주택 관련 대출 수요가 여전히 많아 가계대출이 지난달에만 7조원 가량 증가했다.
1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03조1000억원으로 1월 말(996조4000억원) 보다 6조7000억원 늘었다. 증가 폭은 지난해 2월(9조3000억원)에 이어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4년 이후 두 번째로 크다.
가계대출 중 전세자금 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잔액 733조3000억원)이 한 달 새 6조4000억원 급증한 영향이 컸다. 주택담보대출 증가 액은 1월(5조원)보다 늘었고, 매년 2월 기준으로 작년(7조8000억원)에 이어 통계 작성 이래 두 번째로 많다.
이중 전세자금 대출 증가 폭도 한 달 사이 2조4000억원에서 3조4000억원으로 1조원 커졌다.
신용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타대출(268조9000억원)은 1월 말 대비 3000억원 불었다. 다만 전월(2조6000억원)이나 지난해 2월(1조5000억원)과 비교해 증가 속도는 한풀 꺾였다.
박성진 한은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차장은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전세자금대출을 중심으로 높은 증가세를 지속했다"면서 "전세자금대출 증가에는 전셋값, 신학기 이사철 수요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용대출 증가 폭 축소에 대해선 "주식시장 조정에 따라 개인의 투자 관련 자금 수요가 둔화했고, 설 상여금 지급으로 가계에 자금도 유입됐다"면서 "여기에 금융당국의 신용대출 규제, 은행의 자체적 대출 태도 강화 등도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은행뿐 아니라 금융권 전체 2월 가계대출 증가액은 9조5000억원이었다. 1월(10조4000억원) 대비 가계대출 증가폭이 9000억원 줄었지만, 1년 전과 비교해 규모가 8.5% 늘었다.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의 2월 가계대출 증가폭(2조8000억원)은 1월과 동일했다. 종류별로는 주택담보대출이 1조3000억원, 신용대출이 1조5000억원 늘었다. 1월 증가폭과 비교하면 주택담보대출이 4000억원 증가한 반면, 신용대출은 4000억원 감소했다.
기업 대출의 경우 2월 말 기준 기업의 은행 원화 대출 잔액은 995조3000억원으로, 1월보다 8조9000억원 늘었다. 2월 증가액만 따졌보았을 땐 2009년 6월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이 개인사업자 대출 4조1000억원을 포함해 한 달 새 8조4000억원이나 증가했는데, 이 또한 2월 기준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대기업 대출 증가 폭(6000억원)은 중소기업 증가 폭의 7% 수준에 그쳤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개인사업자 등 중소기업은 코로나19 관련 자금 수요가 있고, 시중은행과 정책금융기관들의 금융지원이 이어졌기 때문에 대출을 통한 자금조달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대기업의 경우 대부분 대출이 아닌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대출 증가 폭이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여신이 아닌 은행의 수신 잔액은 2월 말 현재 1963조8000억원으로 1월 말 대비 38조3000억원 늘었다. 수신 종류별로는 단기자금 성격의 수시입출식예금이 35조5000억원 급증했다. 정기예금도 2조6000억원 증가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수시입출식예금이 기업의 결제성 자금 예치와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교부금, 가계 자금 예치 등의 영향으로 급증했다"면서 "일부 은행의 규제비율 관리를 위한 자금 유치 등에 따라 정기예금도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반면 자산운용사의 수신은 1월 34조3000억원 늘었다가 재정집행을 위한 국고자금 회수 등의 영향으로 2월에는 6조원 감소하며 대조를 보였다.
이미선 기자 alread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