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중국)=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5년의 기다림 끝에 준우승 설움을 씻고 첫 금메달을 목에 건 오상욱(26·대전광역시청)의 얼굴에선 만감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펜싱을 시작해 꿈에 그리던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르 개인전 첫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지만, 결승에서 꺾은 상대가 '어펜저스'(어벤저스+펜싱) 일원이자 존경하는 선배인 구본길(34·국민체육진흥공단)이기 때문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노릇.
오상욱은 25일 오후 8시50분(한국시각) 중국 항저우 전자대학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구본길을 15대7로 꺾고 우승한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지난 번에 졌던 기억이 있어서 처음에 긴장을 많이 했는데, 후반전에 잘 풀어서 다행"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아울러 "4연패(구본길이 도전하는 기록)에 별로 집중하지 않았다. 결승에서 (본길이)형과 만나 누군가 이기고, 누군가 지겠다는 생각만 했다. 지난 아시안게임 때 복수를 할 생각은 없었다. 이기고는 싶었다"고 말했다.
오상욱은 금메달을 목에 거는 이 순간을 5년 넘게 기다렸다.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대회 사브르 개인 결승은 오상욱의 펜싱 인생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구본길에 14대15, 1점차로 석패하며 눈물을 흘렸다. 운명처럼 같은 무대에서 다시 만난 구본길. 개인전 4연패를 노리는 '전설'을 넘어야 전설이 될 수 있는 법이다.
오상욱은 "얼마 전 크게 다친 뒤 리커버리(회복)를 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옆에서 팀원들이 '잘한다, 잘한다' 하며 자신감을 많이 심어줬다. 내 플레이가 잘한지 모르지만, 잘하려고 하다보니 자신있게 경기를 한 것 같다"고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준결승에서 이란의 모하마드 라바리를 15대11로 꺾은 오상욱의 기세는 결승전에서도 이어졌다. 먼저 2점을 따내며 앞서나갔다. 구본길은 만만치 않았다. 어느샌가 따라잡아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시소게임이 펼쳐졌다. 구본길이 달아나면 오상욱이 따라붙었다. 7-7 동점 상황에서 오상욱이 1점을 따내며 모처럼 리드를 잡았다. 이후 오상욱은 내리 5점을 따내며 점수차를 12-7로 크게 벌렸다. 오상욱은 그 뒤로도 3점을 더 따내며 15대7로 승리했다.
경기 중 서로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세리머니를 자제했던 오상욱과 구본길은 멋진 승부를 펼친 뒤엔 뜨겁게 포옹했다. 오상욱은 "한국 선수끼리 만나 마음이 편했다. (한국 선수끼리 펼치는 결승은)우리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성적이었다"고 했다.
오상욱은 단체전에서 2관왕을 노린다.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오상욱 구본길 김정환(국민체육진흥공단) 김준호(화성시청) 등 '어펜저스'(어벤저스+펜싱)가 재가동된다.
항저우(중국)=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