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이 창간(1990년 3월 21일) 이후 33년10개월 만에 지령 1만호를 맞았다. 독자와 함께 쉼없이 달려온 지난 30여년, 당대 최고의 스타들과 함께 했다. 1만호에 자타공인 '세계 최강' 남자 사브르 '어펜져스(어벤져스+펜싱)'가 빠질 수 없다. 함께일 때 더욱 강한 이들은 2017년 세계선수권 이후 단체전 4연패, 2012년 런던,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단체전 2연패 역사를 썼다. 2024년 파리올림픽 3연패를 목표 삼은 올해, '어펜져스'엔 변화가 생겼다. '헌신적 팀플레이어' 김준호가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3명이 된 '어펜져스' 김정환(40) 구본길(34·이상 국민체육진흥공단) 오상욱(27·대전시청)은 오늘도 변함없이 진천 선수촌 피스트에서 날선 칼을 겨눈다. 위기는 기회이고, 인생은 도전이고, 정상은 지키는 것이다.
'불혹의 불꽃펜서' 김정환
1982년생 김정환, '불꽃 펜서'라 불리는 사나이는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국가대표선수촌에 있다. 19년째 태극마크를 단 채 생애 4번째 올림픽에 도전한다. 지난해 햄스트링 부상으로 은퇴 기로에 섰다. "나란 사람이 원래 세팅이 그렇게 돼 포기가 안된다"고 했다. "작년에 다치면서 '거의 다 왔구나' 생각했다. 내려놓을까도 생각했지만 나중에 '도전해볼 걸' 미련이 남을 것같았다. 너덜너덜하지만 몸이 허락할 때까지 끝까지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마음먹은 대로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실패든 성공이든 받아들이자는 마음으로 입촌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김준호의 은퇴로 파리올림픽 엔트리 4명을 뽑는 무한경쟁이 시작됐다. 2000년대생 후배들과의 진검승부다. 김정환은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당연히 져줄 생각은 없다. 진다면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다. 내 모든 커리어는 이 친구들 덕이다. 부상 후 새삼 감사함을 느끼게 됐다. 이 선의의 경쟁에서 나는 도전자"라고 말했다. "국가대표 19년차에 가장 어려운 게 마음을 비우는 건데 이젠 그 방법을 알 것같다"고 했다.
김정환은 리우-도쿄올림픽 개인전 2연속 동메달리스트다. '어펜져스' 유일의 개인전 올림픽 메달보유자다. 비결을 묻자 "올림픽은 올림픽만의 뛰는 방식이 있다. 올림픽의 중압감, 증명해야 하는 무대를 즐긴다. 꼭 메달을 따야 한다는 마음이 아니다. '그 누구도 날 쉽게 이기진 못해, 톱랭커의 발목을 잡을 거야'라는 마음이다. 랭킹이 앞서도, 전적이 밀려도 상관없다. '과거는 인정 못해. 내가 더 잘하는지, 네가 더 잘하는지는 오늘 이 순간 사람들이 판단해. 오늘 이곳에서 누명을 씌워주마'하는 작전이 성공했다"고 귀띔했다.'어펜져스'의 올림픽 3연패는 가능할까? 베테랑 펜서가 답했다. "날 데리고 가는 게 좋을 거다. 난 올림픽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적 없는 '부적'같은 존재다. 파리에 가면 메달색은 장담 못하지만 내 이름을 걸고 어떤 메달이든 딸 것이다."
'본투킬 검객' 구본길
'어펜져스'의 역사는 곧 '본투킬' 구본길의 역사다. 2012년 런던올림픽 막내로 첫 금메달을 따낸 후 2021년 도쿄올림픽 2연패를 이뤘다.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선 통산 금메달 6개, 한국선수 역대 최다 금메달 타이기록도 세웠다. 가장 오래, 가장 잘하는 선수로 버텨온 비결은 또렷한 목표의식과 지고는 못사는 승부욕이다. "우린 은, 동은 취급 안한다"는 그는 새해 목표로 "금메달"을 외쳤다. "청룡의 해, 파리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남자 사브르가 3연패 대기록을 세우는 것, 대한민국 펜싱 역사에 기록을 하나 더 쌓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평생 한번도 나가기 힘든 올림픽, 4번째 도전을 눈앞에 둔 구본길은 "기록도 감사하지만 나가서 메달을 따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펜싱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우주 아빠'가 돼 나선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 아들을 위한 금메달 약속을 지켰다. 파리올림픽의 해, 또 하나의 동기부여는 마법처럼 찾아온 '올림픽둥이'다. "지난 11월에 둘째가 생겼다. 마침 8월 파리올림픽 기간이 출산 예정일이다. 우주에게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안겨줬으니 '우주 동생'에겐 파리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주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메달 부자' 구본길이 유일하게 갖지 못한 메달은 올림픽 개인전 메달. "올림픽 때마다 개인전의 한을 이야기했는데 세 번의 실패를 겪었다. 욕심보다는 내려놓고 잘 준비하면 좋은 기회가 다가오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구본길은 김준호의 은퇴 이후 팀내 무한경쟁 구도를 반겼다. "올림픽 엔트리 경쟁을 하게 된 건 태극마크를 단 이후 16년 만이다. 초심을 다시 느낀다. 이전까진 안정적인 자리였지만 이젠 선의의 경쟁이 있다. 누가 나갈지 모른다. 누가 나가더라도 단체전에선 좋은 성적이 날 것이다. 물론 내가 나가야겠지만."
ISTP '막내온탑' 오상욱
'만찢남' 오상욱은 '어펜져스'의 막내다. 항저우아시안게임 개인전-단체전 2관왕에게 새해 목표를 묻자 "파리올림픽 개인-단체전 2관왕이다. 다들 그렇게 대답할 때까지 계속 물어보시더라. 모든 대회는 금메달을 목표로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기대가 컸던 3년 전 첫 도쿄올림픽 8강전서 오상욱은 점수 1점을 도둑맞았다. 13대15로 석패하며 메달을 놓쳤다. 그는 "도쿄 때는 너무 떨렸다.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도 안난다. 점수를 잃어버린 것도 나중에 알았다. 진짜 큰 교훈이 됐다. 어떤 마음으로 올림픽을 뛰어야 하는지 배웠다"고 했다. "그 이후론 후회한 경기는 없다. 지더라도 만족하는 경기를 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준호가 빠진 '어펜져스'의 미래에 대해 "준호형은 단체전에서 최고의 선수였다. 형의 공백이 크다. 메워줄 후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후배들과 함께 할 '펜싱코리아'의 미래에 대해선 "도경동, 박상원 등 후배들이 정말 잘한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세계 최강 남자사브르에 대한 라이벌들의 견제가 뜨거운 시점, 오상욱은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우리가 하고 있는 운동은 옳다"고 자신했다.
MZ세대들의 신사주로 불리는 MBTI, 오상욱은 ISTP다. 심플, 우직하고 냉정하고 툭툭 털어버리는 성격이 운동선수에겐 딱이다. "즉흥적이고 금방 잊어버리는 성격인데 경기 때 몸이 다 기억하더라"며 웃었다. 계획형 인간은 아니지만 월드클래스답게 운동 계획은 철저하다. 훈련장에서 잠시도 쉬지 않았다. 피스트 옆에서 틈틈이 '나홀로' 스쿼트에 몰입했다. "매일 '펜싱 스쿼트' 200개씩 하기로 새해 계획을 세웠다. 오늘이 사흘째다."
진천국가대표선수촌=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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