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의 앞 일이다.
한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부진의 원흉이자 빨리 없애야 할 적폐로 여겨졌던 해리 매과이어(32)가 끝내 팀을 구해낸 '영웅'으로 다시 돌아오며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더불어 매과이어를 버리지 않고 붙잡은 후벵 아모림 감독의 선견지명과 믿음에도 새삼 감탄의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매과이어는 맨유 역사상 지워지지 않을 명승부의 주역이 됐다.
맨유는 18일(이하 한국시각) 영국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올림피크 리옹(프랑스)과의 2024~2025시즌 유로파리그 8강 2차전에서 120분 혈투 끝에 5대4로 승리했다. 원정 1차전에서 2대2로 비긴 맨유는 1, 2차전 합계 7대6을 만들며 기적적으로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스코어에서 드러나듯 이날 경기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2-0에서 2-2가 됐고, 2-4로 뒤집혔다가 다시 5-4로 맨유가 뒤집은 경기였다. 영화 시나리오도 이렇게 쓰면 '너무 작위적'이라고 비난 받을 법한 경기였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맨유에 승리를 안긴 인물이 바로 매과이어였다.
맨유는 전반 10분과 46분에 각각 마누엘 우가르테와 디오구 달로트의 골을 앞세워 2-0을 만들었다. 하지만 리옹이 무섭게 추격해왔다. 후반 26분과 32분에 코랑탱 톨리소, 니콜라스 탈리아피코의 연속 골을 앞세워 기어코 동점을 만들었다. 승부는 연장으로 이어졌다.
리옹의 기세가 계속 이어졌다. 후반 44분 톨리소의 퇴장으로 10명이 뛰는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았다. 연장 전반 14분 라얀 세르키가 역전골을 넣었고, 연장 후반 4분 알렉상드르 라카제트의 골까지 터지며 4-2로 달아났다. 시간은 겨우 10분여 남아있었다. 맨유의 패배가 눈 앞에 다가온 듯 했다.
하지만 맨유는 올드트래포드를 찾은 팬들에게 영화보다 더 짜릿한 대반전 드라마를 선사했다. 연장 후반 9분에 브루노 페르난데스가 페널티킥을 넣어 추격을 시작한 뒤 후반 15분 코비 마이누의 동점골이 터져 4-4가 됐다.
피날레는 '돌아온 탕아' 매과이어가 날렸다. 수비수인 매과이어는 연장 후반 막판 최전방으로 전진해 공격에 참여했다. 이판사판, 마지막 승부수였다. 결국 연장 후반 16분에 머리로 결승골을 우겨넣으며 맨유의 영웅이 됐다.
돌아온 탕아가 영웅이 되는 서사. 인간극장에 나올 법한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2019년 역대 EPL 수비수 최고 이적료인 8000만파운드(약 1510억원)에 맨유에 합류한 매과이어는 이적 초반 팀의 주장을 맡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2020년 여름 휴가 중 음주 폭행 사고에 휘말리며 이미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어 2022년 에릭 텐 하흐 감독이 부임한 뒤 주장직을 박탈당하고 백업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됐다. 텐 하흐는 매과이어를 신뢰하지 않았다. 이 시기 팬들의 비난이 폭주했다. 매과이어는 2023년 여름 팀을 떠날 뻔했다. 웨스트햄 이적 직전 매과이어는 마음을 바꿔 팀에 남았다.
이후 텐 하흐가 떠날 때까지 굴욕의 시간을 견뎠다. 고생 끝에 낙이 왔다. 지난해 10월에 새로 부임한 아모림 감독은 매과이어에게 다시 주전 센터백 자리를 부여했다. 매과이어는 이번 시즌 리그 22경기에 나오며 부활했다. 이어 지난 1월, 맨유와 1년 연장 옵션을 발동했다. 아모림 감독의 절대적인 신뢰 속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과는 '영웅 부활'이었다. 매과이어는 리옹과의 8강 2차전 막판 역전 헤더골로 이미 1년 연장 값을 다 해냈다. 맨유 홈팬들은 돌아온 영웅을 향해 눈물 섞인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