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새로운 투구 혁명의 시작일까.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벤치가 투구에 직접 관여하는 팀이 잇달아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MLB닷컴은 29일(한국시각) '마이애미 말린스와 콜로라도 로키스는 올 시즌 더그아웃에서 투구 지시를 내리고 있으며, 뉴욕 메츠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최근 몇 달 간 이런 방안을 시험하거나 논의한 팀'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론디포파크에서 펼쳐진 콜로라도-마이애미 간 3연전에서는 이색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양팀 모두 투수 코치가 사인을 내면 포수가 피치컴으로 이를 전달하고 투수가 던지는 방식으로 마운드를 운영했다. 콜로라로의 앨런 라이히만, 마이애미의 롭 마르첼로 투수 코치가 사흘 내내 지략 대결을 펼쳤다.
벤치에서 투구 사인을 내는 게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경기 내내 투수 코치가 사인을 내는 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런 운영이 가능한 건 기술의 발전 때문. 메이저리그 뿐만 아니라 KBO리그, 일본 프로야구(NPB) 모두 분석팀을 운영하며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해 경기에 활용하는 게 일반화된 지 오래다. 메이저리그에서 벤치가 직접 사인을 내기 시작한 건 투수-포수의 직감보다는 데이터를 통해 드러난 상대 타자의 약점을 파고드는 게 효율적인 투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에 기반한다. 매 순간 투수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포수의 부담감을 덜어주는 측면도 있다는 시각이다. 이미 피치컴을 통해 투수-포수가 사인을 주고 받는 모습이 사라진 가운데, 벤치의 투구 관여는 새로운 장을 여는 것처럼 여겨질 만하다.
이에 대해 시애틀 매리너스 포수 칼 랄리는 다른 시각을 내비쳤다. 그는 ESPN 제프 파산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그런 시도를 이해는 한다. 요즘은 데이터가 워낙 많고, 그걸 컴퓨터에 입력하면 어떤 공이 좋고 나쁜지를 금방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라 본다. 그렇게 되면 모든 투수들이 똑같은 공만 던지게 될 것이다. 한 가지 구종만 활용하면 그 효과는 떨어지게 된다"며 "아무리 세계 최고의 공을 던진다 해도, 그 공만 던지다 보면 언젠가는 타자들이 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경기가 시작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른다. 투수가 1회 선두 타자 홈런을 내주고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다"며 "최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게 중요하다. 경기에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고, 순식간에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랄리의 지적처럼 경기의 불확실성은 데이터의 영역을 벗어나는 부분이다. 벤치에서 투구 지시를 내려도 투수가 원하는 코스에 던지지 못하고 실투로 연결되면 효과는 반감된다. 새로운 시도가 과연 투구 혁명으로 귀결될 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신기술의 실험에 그칠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전망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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