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월드 그랑프리 당시 여자 배구국가대표팀 주전 세터 이숙자(32·GS칼텍스)는 허리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결국 다음달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부터는 대표 명단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숙자는 소속팀으로 돌아와 꾸준히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새시즌 개막이 코앞이었다. 지난해 당한 꼴찌 수모를 만회하기 위해 맏언니인 자신이 중심을 잡아줘야 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9경기에서 2승7패를 기록, 팀이 최하위로 추락했다.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던 12월 20일, 결단의 시간이 다가왔다. 허리 수술을 감행했다. 현실도피는 아니었다. 더 나은 남은 시즌을 위해 잠시 한발짝 뒤로 물러선 것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시간이 이숙자에게 약이 됐다. 두가지 선물을 얻었다. 첫번째 선물은 '여유'였다. 이숙자는 수술을 받기 전 이선구 GS칼텍스 감독에게 한가지 숙제를 받았다. '이기는 법을 알아오라'는 주문이었다. 이숙자는 "배구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감독님께서는 '코트를 떠나 있을 때 여유롭게 경기운영을 할 수 있는 눈을 키워서 오라'고 말씀하셨다"고 회상했다. 재활하는 동안 GS칼텍스 경기는 TV를 통해 지켜봤다. 이 감독의 말대로였다.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프로 13년차 선수이지만, 자신이 더 발전시켜야 할 점도 발견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숙자는 "시즌 초반 연패의 수렁에 빠졌던 것은 온전히 내 실수였다. 기존 용병을 믿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벤치에서 지시가 내려지면 이행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믿음이 없다보니 국내 선수들에게 많은 토스를 올렸던 것 같다. 용병과 국내선수들의 조화를 이뤘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이숙자는 용병 활용법을 터득했다. 중요한 순간 용병에게 득점할 기회를 줘 용병의 기도 살리고 동시에 국내선수의 분위기도 끌어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깨우쳤다. 두번째 선물은 돈독해진 부부관계였다. 결혼 2년차인 이숙자는 숙소 생활을 해야 하는 탓에 달콤한 신혼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국제대회 기간에는 화상채팅이나 인터넷 전화로 보고싶음을 달랬다. 그러나 이번 한달이 넘는 재활기간에는 집에 머물르며 휴식을 취했다. 결혼한 뒤 가장 오랫동안 남편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임진년, 32세가 된 이숙자다. 항상 '현역 은퇴'도 염두해두고 있다. 처음으로 은퇴를 생각했던 것은 프로 5년차 때다. 현대건설에서 선배들에게 밀려 주전 세터로 도약하지 못할 때 나약한 마음을 먹은 적이 있다. 특히 부상이 찾아오면 은퇴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러나 이숙자에게는 신념이 있다. '은퇴를 해야 은퇴다. 그전까진 최선을 다하자.' 노병 이숙자가 죽지 않는 이유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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