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 아니면 '통과의례'?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강제적, 선택적 셧다운제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교육과학기술부마저 학교폭력의 주원인으로 게임을 지목, 규제 행렬에 가세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마저 지난 3일 "게임의 공해적 측면도 생각해야 한다"며 게임 산업을 압박,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문화 콘텐츠 수출의 첨병이자 한류의 또 다른 주역, 지식경제 사회에서 최고의 고부가 가치 산업, 그리고 무한한 창의력의 진수로 추앙받던 한국의 게임 산업은 어느새 '공해'로 전락한 것이다. 갑자기 왜 게임이 이 정도의 몰매를 맞고 있는지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나온다. 정권 말기 부처간의 '파워 게임'이라든가, 정책 실패를 자인하기 싫어 책임을 전가시키기 위한 '희생양 찾기' 혹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기업 길들이기'의 일환이라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어쨌든 역설적으로 '어린애들의 오락'에 불과했던 게임이 부지불식간에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메이저 문화로 성장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만큼 게임 산업이 사회에 가져야할 책임이 더 커졌다는 방증도 된다. 기업들에 요구되는 '동반성장'은 요즘 최고의 화두이다. 이번 위기가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게임 산업의 한껏 높아진 위상을 확인시키는 동시에, 게임 과몰입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게임사와 이용자들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통과의례'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기성세대의 게임 거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던 게임문화재단 김종민 이사장은 지난 2010년 취임하면서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게임은 날카롭고도 빠르게 우리의 라이프 사이클 속으로 뛰어들었다. 기성세대들이 회피할수도, 막아설 수도 없는 문화가 됐다"며 "게임이 세대간의 단절이 아닌 소통의 수단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근 공터에서 공놀이나 딱치치기, 고무줄놀이 등을 하던 기성세대의 아날로그 놀이문화가 이제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디지털 놀이문화인 게임으로 순식간에 대체된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학원으로 내몰리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놀이터'가 가상의 공간으로 바뀐 셈이다.
문제는 게임이 아날로그 놀이문화보다 손쉽게 즐길 수 있고, 시공간의 제약이 없어진데다 체력적인 피로도가 적다보니 몰입도가 크다는 것이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적당한 선을 넘어설 경우 부정적인 부분이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를 통제해야 할 부모들이 게임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세대간의 소통보다는 단절의 원인이 되고 있다. 게임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가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게임 시간과 방법을 조율하는 '선택적 셧다운제'를 도입했는데,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우선 부모들이 게임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인 게임에 대해 무조건 거부를 한다거나 혹은 자녀를 망치는 '해악'으로만 바라보면서 현재의 악순환은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
전형적인 희생양 찾기
국내외적으로도 게임 이용과 학교폭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리적 근거나 연구성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몇몇의 사례를 마치 일반적인 것처럼 확대, 재생산시킨 '게임 공포론'이 확산되고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학교폭력으로 인해 수세에 몰린 교육과학기술부는 무한 경쟁으로만 내세운 교육 정책의 실패를 게임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전형적인 '희생양 찾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교과부는 이렇다 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96년 청소년보호법 제정의 계기가 됐던 청소년 폭력조직의 원인으로 만화가 낙인찍힌 적이 있다. 만화에 빠진 아이들 때문이라는 것으로, 역시 명확한 근거는 아니었다. 그 자리를 이제 게임이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여성가족부도 수면권과 학습권 보장을 이유로 지난해 16세 이하 청소년들이 심야시간에 게임을 못하게 하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관철시켰다. 하지만 최근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심야시간 평균 동시접속자수는 제도 시행에 비해 불과 4.5% 줄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간대 청소년 이용 비율을 최소 10%, 최대 30%까지 추정한 것과 비교하면 실효성이 극히 미미한 것이다. 오히려 부모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우회 접속하는 불법을 부추긴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가부도 심야에 청소년들이 얼만큼 게임을 이용하는지에 대한 선행연구나 자료도 없이 무조건 밀어붙였던 점을 간접 시인하기도 했다.
업계 자성의 계기
게임 산업계도 이번 위기를 자성의 계기와 동시에 한발짝 더 도약하기 위한 기회로 보고 있다.
중소 규모인 네오위즈게임즈가 지난해 고용창출 우수기업의 하나로 꼽힌 것만 봐도 게임 산업의 청년 고용 창출 효과는 상당하다. 문화 콘텐츠 수출액으로도 한류의 첨병이라는 K-POP이나 영화, 드라마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2조원 규모이다.
다만 그동안 하위문화로 치부되면서 분배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맞춰왔던 것이 사실이다. 게임 업계 스스로도 채 20년도 되지 않아 8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할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한 게임사 대표도 "이렇게 빨리 청소년 문화의 대세로 자리잡을지 솔직히 몰랐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는사이 게임 과몰입이라는 문제가 대두됐다. 수익에 집착해 애써 모른 척 눈 감다보니 사회적인 저항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그래서 우선 대형 게임사를 중심으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줄이고 게임 과몰입을 치유하며, 동반성장을 위한 사회 공헌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외 사회단체와 함께 게임의 긍정적 기능 전파를 위해 교육-기능성 게임을 함께 만들기도 하고 게임 과몰입 상담치료센터를 만드는가 하면 사회공헌팀을 확대, 발전시켜 적극적으로 사회에 손을 내밀고 있다. 게임 전문가들은 "이제 게임사들이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부정적인 인식도 줄이고 산업 규모에 걸맞는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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