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6일.'
황진성(28·포항)의 머리 속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은 날짜다. 이 날 열렸던 울산과의 2011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플레이오프에서 황진성은 0-0 상황이던 전반 22분 페널티킥 키커로 나섰다. 전반 6분 모따가 페널티킥을 실축한 뒤 다시 얻은 페널티킥이었다. 마음의 부담이 컸다. 중앙으로 강하게 찼지만 울산 김승규 골키퍼에게 막혔다. 이 날 두 개의 페널티킥을 놓친 포항은 울산에게 0대1로 졌다. 포항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를 거쳐야하는 신세가 됐다.
황진성은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인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침착하게 킥을 했더라면 이겼을 텐데…'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차라리 모따처럼 팀을 떠나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주위에서 말을 걸기가 민망할 정도로 축 늘어져 있었다. 2011년이 지나갈 때까지 황진성의 움츠러든 어깨는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실망을 걷어내는 방법은 훈련밖에 없었다. 황진성이 꺼낸 카드는 프리킥이었다. 이제까지는 주로 페널티에어리어 오른쪽에서 얻은 프리킥만 찼다. 왼발잡이의 특성상 오른쪽 프리킥을 차는 것이 유리했다. 왼쪽 프리킥은 오른발이 좋은 김재성이 주로 해결했다. 하지만 김재성은 군입대로 팀을 떠났다. 왼쪽 프리킥도 맡아차야만 했다.
새로운 프리킥이 필요했다. 인도네시아와 제주 전지훈련 기간은 물론이고 포항 송라클럽하우스로 돌아온 뒤에도 프리킥 훈련을 빼먹지 않았다. 팀 훈련이 끝나면 공을 한웅큼 가져와서 프리킥을 쏘아댔다. 저녁별이 뜰 때까지 프리킥을 차면서 울산전 페널티킥 실축의 아쉬움도 함께 날려버렸다.
18일 오후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촌부리(태국)와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황진성은 그라운드 위에 서 있었다. 왼쪽 날개로 나선 황진성은 촌부리 진영을 휘저었다. 전반 28분 기회가 찾아왔다. 페널티에어리어 왼쪽 코너 부근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황진성이 공 앞에 섰다. 어느새 지쿠가 슬금슬금 공앞으로 왔다. 자신이 차겠다는 의미였다. 황진성은 아무말 없이 각도와 거리를 재더니 자신이 차겠다고 했다. 뒤늦게 달려온 신형민도 '황진성이 차도록 하자'고 설득했다. 지쿠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자리를 옮겼다.
황진성의 왼발을 떠난 공은 평소와는 다른 궤적을 그렸다. 수비벽 위과 아닌 옆을 지나쳤다. 낙차 큰 커브를 그린 공은 몸을 던진 상대 골키퍼의 손을 맞고 골문안으로 빨려들어갔다. 골을 확인한 황진성을 하늘을 바라보며 검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는 감사의 기도를 읖조렸다. 페널티킥 실축의 아픔을 날려버린 순간이었다. 포항은 황진성의 프리킥골과 박성호의 헤딩골에 힘입어 촌부리를 2대0으로 눌렀다.
황진성은 "지난해 울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하는 바람에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본선행 티켓을 놓쳐 감독님과 선수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골로 부담감을 털어냈다. 이제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꼭 우승해서 연말에 FIFA클럽월드컵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포항=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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