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커룸에서 술 보고 놀란 경우가 몇차례 있었다.
지난 2004년 메이저리그 취재를 할 때였다. 최희섭이 플로리다 말린스(현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뛸 때 몇몇 구장의 라커룸에서 냉장고 안에 병맥주 수십병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걸 봤다.
어째서 라커룸 안에 술이 있는 것일까. 미국에서 맥주 정도는 음료수 개념이라는 걸, 또한 폭음이라는 게 드물다는 걸 알게 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당시 말린스의 에이스였던 조시 베켓이 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두눈으로 목격했다. 그해 4월12일(한국시각) 조시 베켓이 필라델피아와의 홈게임서 7이닝 2안타 무실점, 11탈삼진으로 시즌 첫승을 기록했다. 경기후 말린스 클럽하우스에서 베켓이 마스터즈 골프 중계를 보면서 대중적인 맥주인 '버O 라이트'를 마시고 있는 걸 봤다. 바로 옆에 감독과 투수코치가 있었는데 누구 하나 신경쓰지도 않았다.
상식적으론 잘 이해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투수들이 경기후 아이싱을 하는 건 파열된 모세혈관을 빨리 회복시키는 게 목적이다. 그런데 술은 이와 반대되는 작용을 할텐데, 선발투수가 경기후 곧바로 맥주를 마시고 있다니! 다른 구장에서도 이같은 장면을 흔히 보게 되면서 나중엔 무감각해졌다.
몇년전 국내 모 구단의 라커룸에서도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선수 라커 위쪽에 떡하니 위스키 큰병이 놓여있었다. 고급 브랜드는 아니었다. 술이 절반쯤 담겨있었다. 화들짝 놀라 "이거 여기 놔두면 큰일 나는 것 아니냐"고 물어봤다. 알고보니 '마시는 용도'가 아니었다. 간혹 야구 장비를 관리한다거나 할 때 쓰는 세척제 용도였다. 바보가 아닌 이상 라커에 위스키 병을 올려놓을 리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만약 김응용 전 삼성 감독이나 김성근 전 SK 감독이 라커룸에 불쑥 들어갔는데 어떤 선수가 편안하게 반쯤 누워서 병맥주를 꿀꺽꿀꺽 마시고 있다면 그후엔 어떤 장면이 이어질까. 20년전의 김응용 전 감독이라면 해당 선수는 원투 스트레이트에 '삼단 콤보'로 두들겨맞으며 코너까지 몰렸을 것이다. 김성근 전 감독이라면, 그 선수는 당분간 1군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프로야구에선 라커룸 안에 다만 맥주 한병이라도 굴러다니는 일을 상상하기 어렵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신임 보비 발렌타인 감독이 라커룸내 알코올 반입금지를 선언했다고 AP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지난해 보스턴은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1위를 달리다가 9월에만 7승20패로 부진을 보이며 결국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게다가 당시 조시 베켓, 존 레스터, 존 래키 등 선발투수들이 경기중 라커룸에서 맥주와 통닭 파티를 벌인 사실이 나중에 알려지며 큰 비난을 샀다. 이 경우엔 팀 상황이 안 좋은데 게다가 '경기중 음주'였다는 게 큰 이슈가 됐다. 이들은 최근 스프링캠프가 시작될 때 해당 사건과 관련해 팬들에게 사과의 뜻을 표한 바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메이저리그 각 구단들은 음주로 인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자 라커룸내 맥주 비치를 불허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어가고 있다. 8년전 조시 베켓이 병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키는 걸 봤다. 그가 이번 사건의 '주요 등장인물'이라고 하니 술이 문제일까 사람이 문제일까를 생각하며 잠시 옛 기억을 되짚어봤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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