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이 유쾌한 표정 속에서 은근히 칼을 갈고 있다.
유도훈 감독은 1일 LG와의 정규시즌 마지막 홈게임을 앞두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KT와 붙든 KCC와 상대하게 되든 어느 쪽이든 '얘기'가 되지 않겠어요?" 흔히 말하는 '스토리'가 나온다는 의미였다.
사연이 있다. 전자랜드는 지난달 17일 KT와의 홈게임서 진 뒤 잠시 '고의패배' 논란에 휘말렸다.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한 전자랜드가 울산 모비스에게 5위를 내주고 일부러 6위를 택하려 한다는 얘기였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6위는 3위인 KT와 맞붙게 된다. 전자랜드가 높이가 좋은 4위 KCC 보다는 이번 시즌 상대전적(4승2패)서 앞선 KT를 파트너로 원한다는 것이다.
그날 경기에서 전자랜드는 용병 허버트 힐이 발목 부상 때문에 뛰지 못했다. 그러자 유 감독은 그간 뛰지 못했던 국내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며 조직력을 점검하려 했다. 여기에 4쿼터에서 슈터 문태종을 쉬게 한 게 더해져 오해를 불렀다. '고의패배' 논란이 이어지자 그후 유 감독은 많이 속상해했다.
어느 프로 종목이든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되면 단기전을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타 종목에서 '불법 베팅사이트 관련 경기조작'이 문제가 되고 있는 타이밍에 '고의패배' 얘기를 듣자 그게 속상했던 것이다.
물론 논란은 오래 가지 않았다. 전자랜드는 그후 오리온스와 삼성전에서 모두 이겼다. 마지막까지 6강 플레이오프 상대팀도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변했다. 3위 KT와 4위 KCC는 1게임차로 거리가 좁혀졌다. 경우에 따라 오는 4일 정규시즌 마지막날 대진표가 결정될 수도 있다.
이래서 '스토리'가 있는 것이다. 만약 전자랜드가 KT와 6강서 붙게 되면 일종의 자존심 싸움이 된다. '고의패배' 논란의 계기가 KT전이었으니 전자랜드와 KT 모두에게 승리에 대한 의미가 커졌다.
전자랜드는 만약 KCC와 대결하게 되면 '설욕전'의 의미가 있다. 지난해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던 전자랜드는 6강 플레이오프를 거쳐 올라온 KCC에게 패해 챔피언결정전 진출이 좌절됐다. 2008~2009시즌에도 전자랜드는 6강 플레이오프에서 KCC에게 2승1패로 앞서다 내리 2게임을 내주며 상위 스테이지 진출에 실패했다.
또한번 KCC를 만나게 되면 전자랜드 입장에선 그야말로 '지겨우면서도 어떻게든 이겨야하는' 스토리가 생긴다. 유도훈 감독은 "목표는 챔피언결정전 진출"이라고 말했다. 어느 팀과 만나든 6강 플레이오프를 이기겠다는 의지다.
이날 전자랜드는 LG와의 홈게임서 막판 대접전 끝에 69대73으로 패했다. 이로써 시즌 최종전에 관계없이 6위가 확정됐다. 이젠 KT와 KCC의 잔여 2경기씩 결과에 따라 파트너가 결정된다. 유도훈 감독이 최근 들어 "하위 팀이 상위 팀을 고르는 게 말이 되는가. 상위 팀이 하위 팀을 초이스하는 것"이라고 자주 말했는데, 진짜 그렇게 됐다.
인천=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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