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 미안해요. 급한 일이 생겨서…."
지난 29일 저녁 서울 송파구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약속시간을 넘겨 나타난 윤빛가람(22·성남)이 멋쩍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기다리던 '선배' 김주영(24·서울)이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경남에서 2년간 한솥밥을 먹은 절친 선후배다. 시크하기로 유명한 윤빛가람의 애교에 김주영이 웃었다. 사진 촬영을 시작하자 각이 나왔다. 신세대 선수답게 어떤 포즈든 척척 해냈다. 카메라가 낯설어 쭈뼛대던 선배들과는 다르다.
단 한번 완강히 거부하는 몸짓이 있었다. 피자를 먹여주는 포즈에 난색을 표했다. 김주영이 일부러 피자를 떨어뜨렸다. "형, 이거 다시 주는 건 아니죠?" 웃음이 터졌다. 경기장 밖에서 아웅다웅 장난을 주고받지만, 그라운드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한 윤빛가람-김주영. 이들은 2012년 K-리그의 대세다.
당당한 그들, 내가 K-리그의 신세대
"가람이 이적설 나오고 바로 통화했어요. 선수 입장에서 안타까웠죠. '나는 이적 때 절대 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전투력이 올라갔죠." 윤빛가람의 이적설을 먼저 지켜본 김주영의 말이다. 윤빛가람과 김주영은 겨울 이적시장의 뜨거운 감자였다. 이적을 둘러싸고 소속팀과 마찰을 빚었다. 결국 김주영은 서울, 윤빛가람은 성남 유니폼을 입었다. 이적 과정에서 신세대답게 소신 발언을 했다. 그간 K-리그는 구단 중심이었다. 선수는 구단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선택권이 없었다. 할 말은 하는 윤빛가람과 김주영은 그래서 주목을 받았다.
김주영은 "내가 선택한 팀에서 뛰고 싶었어요. 수원도 물론 좋은 팀이죠. 하지만 내가 원하는 팀으로 가면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니까. 더 잘하고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라고 당당한 생각을 밝혔다. 윤빛가람도 "성남이 싫은건 아니었어요. 유럽으로 갈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세게 말했죠"라고 했다.
비슷한 처지였던만큼 서로 의지했을 것 같다는 말에 김주영이 "가람이는 나한테 전화 안했어요"라며 치고 나갔다. 윤빛가람이 "형은 바이아웃이 있으니까 당연히 갈 거라고 생각했죠"라고 받아쳤다. 김주영이 응수한다. "네 말이 맞다. 바이아웃 아니면 못했지. 질 것 같은데 왜 덤벼."
피자를 먹여주라고 부탁하자 난색을 표하던 김주영(왼쪽)과 윤빛가람은 결국 장난끼 어린 표정으로 요구에 응했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장소제공=키친171
매력적인 그들, 내가 K-리그의 흥행코드
남자 팬들이 즐비한 K-리그에서 윤빛가람과 김주영은 소녀팬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스타다. 윤빛가람과 김주영은 각각 프로축구연맹이 선정한 벚꽃놀이 함께 가고 싶은 선수,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 받고 싶은 선수 1위에 뽑혔다. 윤빛가람은 이같은 설문조사 결과가 신경쓰인다고 고백했다. "1위하면 솔직히 기분 좋아요. 순위 떨어지면 신경쓰이고." 지명도에 비해 순위가 높은 김주영은 이러한 결과가 민망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윤빛가람이 다시 장난쳤다. "나도 형이 순위 높은 거 의문이에요."
왜 인기가 있는지 본인의 매력을 직접 꼽아달라고 했다. 윤빛가람은 "할 말 다하는 모습? 일부러 시크한건 아니에요. 경상도 남자라 아무래도 퉁명스럽죠"라고 하자, 김주영이 "생각 좀 하고 말해"하고 공격한다. "안그래도 한번 세게 당해봐서 요새는 생각하고 말해요." 'K-리그 안본다'는 발언으로 축구팬들의 포화를 맞아본 윤빛가람다운 대답이었다. 김주영은 유머러스한 점을 최대 매력으로 꼽았다.
두 선수는 트위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미니홈피에서 서로를 공격하던 '윤빛가람-김주영 디스'는 축구팬들 사이에서 아직도 회자된다. 이런 모습들은 팬들이 축구를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특히 남성팬들보다는 여성팬들의 반응이 좋다. 김주영은 "여성팬이 아무래도 팬심이 더 세잖아요. 얼빠라는 얘기도 있지만 도움된다고 봐요. 축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윤빛가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진지한 그들, 내가 K-리그의 대세
올시즌 얘기에 눈빛들이 달라졌다. 달라진 성남의 전력이 궁금한 김주영은 질문을 쏟아냈다. 김주영이 "요반치치 어때?"라고 물으니 윤빛가람은 "형 이런거 물어보는거 승부조작에 해당하는거 알죠?"라고 응수한다. "(김주영)너네 새로 들어온 선수 너무 많아서 조직력 안맞겠네." "(윤빛가람)나만 안맞아요. 마지막에 웃는 건 우리일걸요." 두 선수 모두 올시즌에 대한 기대가 크다. 우승권 전력인 서울과 성남으로 이적했기 때문이다. 아직 K-리그 우승 경험이 없는 그들이다.
김주영은 오고 싶었던 서울이었던만큼 우승에 대한 꿈을 노래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때 처음 본 K-리그가 서울 경기였어요. 그때부터 여기를 홈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원하는 팀으로 온 만큼 개인 성적보다는 우승 생각 밖에 없어요"라고 했다. 윤빛가람도 "우여곡절 끝에 왔지만, 좋은 선수들이 많아 재밌어요. 올시즌에는 꼭 10골-10도움 올리고 싶고, 우승도 해보고 싶어요. 피스컵에서 나를 테스트해보고 싶기도 하고요"라고 했다.
내내 티격태격하던 둘이지만 '부상 당하지 말라'는 당부 때만은 진지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느껴졌다. 새로운 팀에서 성공하는 서로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역시 장난기를 숨길 수 없었다. 김주영이 "태클 조심하라"고 하자, 윤빛가람이 "형 태클 안하잖아요"라고 받아쳤다. 김주영이 웃는다. "거친 태클 안하는 나야말로 무공해(FC서울의 올시즌 슬로건인 '무조건 공격해')축구의 선두주자지."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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