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로농구 삼성은 실망의 연속이었다. 결국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13승41패, 1997시즌(6승15패) 이후 15년 만의 최하위.
사실 삼성의 객관적인 전력을 살펴보면 꼴찌를 할 팀은 아니다. 시즌 전 우승판도를 위협할 다크호스로 떠오를 정도였다. 하승진의 기량을 능가하는 것으로 알려진 최장신 용병 라모스(2m22)와 이승준이 골밑에 있었다. 게다가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이규섭과 김동욱, 그리고 가드진에는 이정석과 이시준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다. 그 원인은 시즌 전부터 싹트고 있었다.
전통의 명가는 없었다
삼성은 프로농구의 '전통의 명가'다. 실업 삼성 시절부터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했고,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올 시즌 전부터 삼성의 행보는 이상했다. 안준호 감독이 사실상 경질됐다. 이해할 수 있었다.
새로운 분위기가 필요했다. 새로운 감독 후보군들이 거론됐다. 세 명이었다.
일단 김 진 감독이 있었다. 그리고 KCC에서 삼성으로 이적해 은퇴한 이상민도 거론됐다.
여기에서 모기업의 입김이 작용했다. 지난해부터 삼성 그룹은 프로스포츠에 쇄신작업에 착수했다.
일단 프로야구에서 선동열 감독을 대신해 류중일 감독이 선택됐다. 프로축구도 마찬가지였다. 윤성효 감독이 차범근 감독을 대신해 지휘봉을 잡았다.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이런 트렌드를 관통하는 가장 큰 이유는 '쇄신'이었다.
그리고 농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기업에서는 젊고 참신한 감독감을 원했다. '이상민 카드'를 내밀었다. 하지만 뉴욕에서 연수 중인 이상민은 경험이 부족했다. 삼성 팀으로서나 이상민 개인으로서나 위험한 선택이었다. 삼성 농구단에서는 김 진 감독을 추천했다. 결국 합의점을 찾은 카드가 중앙대 연승신화를 이끌고 있던 김상준 감독이었다.
삼성이 정통한 한 관계자는 "김상준 감독은 양쪽의 요구조건을 다 갖춘 사령탑이었다. 대학 감독으로서 경험과 함께 참신함을 함께 갖추고 있던 지도자"라고 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김상준 감독이 삼성의 지휘봉을 잡았다.
딜레마를 풀지 못한 김상준 감독
삼성은 초보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에는 매우 까다로운 구단이다. 겉으로는 좋은 전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선수들 개개인별로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잘 꿰면 우승후보를 위협할 수 있는 강력한 다크호스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리멸렬한 경기력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 구단이다.
김 감독은 개혁 작업에 돌입했다. 일단 강 혁을 시장에 내놨다. 괜찮은 선택이었다. 지난 시즌 강 혁은 삼성의 팀동료들과 제대로 융화되지 못했다. 응집력이 떨어진 삼성은 결국 지난 시즌 막판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였고, 결국 플레이오프 6강전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2대2 공격의 달인인 강 혁은 삼성에게는 '계륵'같은 존재였다. 삼성의 입장에서는 강 혁을 중심으로 팀을 개편하든지, 아니면 강 혁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든지 결단을 내려야 했다. 김 감독은 후자를 택했다. 사실 노장인 강 혁(36)을 중심으로 팀을 개편하는 것은 팀을 미래를 위해서는 적합한 선택이 아니었다.
김 감독은 빠르고 강한 농구를 원했다. 중앙대 시절 자신이 주로 썼던 '런 앤 건' 중심의 농구를 원했다. 여름 내내 팀의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집중했다.
그런데 선택된 용병은 라모스였다. 느리지만, 골밑에서 확실한 공격을 할 수 있는 선수.
사실 라모스를 선택한 것은 삼성 입장에서 괜찮은 옵션이었다. 어떤 팀이든 우승을 위해서는 강력한 골밑이 구축되어야 한다. 최근 우승한 KCC나 모비스의 예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높이가 뛰어난 라모스와 스피드와 높이를 함께 갖춘 이승준 조합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
하지만 라모스가 합류할 경우, 라모스 체제로 팀을 개편해야 했다. 센터 중심으로 팀을 개편하는 것은 매우 정교한 세팅작업이 필요하다. KCC 허 재 감독도 우여곡절 끝에 하승진을 중심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초보 감독인 김 감독이 이 작업을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승준에 대한 과대평가
김 감독은 공격의 구심점을 이승준으로 삼았다. 시즌 초반 이승준과 라모스의 하이-로 2대2 공격(자유투 부근의 하이 포스트에 이승준이 서고, 골밑 근처인 로 포스트에 라모스가 서 공격을 하는 것)이 주된 공격루트였다. 그런데 이승준은 강점과 단점이 뚜렷한 선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이승준은 각광을 받았다. 수비와 리바운드에 집중했고, 속공에 적극 가담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유재학 감독이 이승준이 잘할 수 있는 정확한 플레이를 정해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이승준에게 '멀티 플레이어' 역할을 맡겼다. 내외곽을 넘나들며 득점, 패스를 모두 주문했다.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중앙대는 호화멤버였다. 당연히 오세근 함누리 김선형 등이 있었다. 당연히 대학 수준에서 멀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프로는 다르다. 이승준은 그럴 능력이 없었다.
승부처에서 실책을 연발하며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승준으로부터 패스미스가 많았다. 라모스와 이승준을 중심으로 팀이 돌아가면서 이규섭 김동욱 이정석 이시준 등은 플레이의 폭이 좁아졌다.
사실 라모스는 골밑 1대1 뿐만 아니라 패스능력이 좋은 선수. 라모스의 퇴출이 결정됐을 때 KCC 하승진이 "라모스는 막기 힘든 선수였는데"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은 라모스가 이런 기량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라모스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라모스의 능력을 팀 전력과 직결시키기 위해서는 좀 더 세밀한 세팅작업이 필요했다. 촘촘히 가드, 포워드들의 자리를 점검하고 제 2, 제3의 공수옵션을 마련했어야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끝내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라모스는 퇴출됐고, 높이는 떨어지지만 스피드가 좋은 아이라 클락이 선택됐다. 김 감독이 너무나 원했던 용병교체였다.
삼성의 미래는 없다
이정석이 시즌 중반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됐다. 삼성으로서는 타격이 있었다. 하지만 라모스와 이승준, 그리고 김동욱과 이규섭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면 이정석의 공백은 최소화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김동욱은 패스능력이 좋은 포워드. 게다가 이시준 역시 득점력과 함께 수비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감독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했다. 자신이 추구한 '런 앤 건' 농구를 위해 클락과 함께 오리온스에서 트레이드를 시도하고 있는 김승현을 원했다.
결국 김동욱을 내주고 김승현을 데려왔다. 문제는 삼성이 미래를 포기하고 현재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올 시즌이 끝난 뒤 김동욱은 FA다. 하지만 현 KBL 규정 상 원 소속구단이 FA를 잡는 게 유리한 것도 사실이다.
김동욱은 트레이드된 오리온스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사실 그런 능력이 있는 선수다. 즉 삼성에서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의미.
김승현의 게임리드 능력은 모든 전문가들이 인정한다. 하지만 직접 그를 데려쓰는 것은 주저한다. 김승현 트레이드 소문이 돌았던 KT 전창진 감독이 "김승현을 데려올 생각이 없다"고 잘라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김승현은 허리 디스크가 모두 낫지 않았다. 김승현을 데리고 있었던 이충희 오리온스 전 감독이 "김승현의 디스크는 완치되지 않았다. 무리하면 안된다"는 말을 한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다. 김승현은 올해 34세다. 허리 부상의 여파로 전성기에 비해 운동능력이 많이 떨어졌다. 제 기량을 찾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 특히 수비가 되지 않는다. 화려한 플레이에 비해 팀 공헌도는 떨어지는 유형의 선수가 됐다.
이런 선수를 중심으로 팀을 조직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선택이다. 이정석이 돌아올 경우 포지션 중복의 문제도 있다. 그 '기회비용'이 김동욱이라는 점은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김 감독의 입장에서 '런 앤 건'을 위해서는 좋은 패싱센스를 지닌 가드가 필요했다. 시즌 막바지에 삼성이 어느 정도 좋은 경기력을 보인 것은 김승현의 역할이 있었다. 하지만 삼성의 객관적인 전력은 시즌 초반 우승후보를 위협할 다크호스에서 평범한 중하위권이 됐다. 이승준과 아이라 클락, 그리고 김승현의 조합으로 동부나 KT, KCC, KGC, 모비스 등과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없다.
이런 상태면 내년 시즌도 삼성의 부활은 요원하다. 올 시즌 '전통의 명가' 삼성의 추락은 전력의 한계가 아닌 잘못된 선택이 근본원인이었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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