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 주술을 걸어 시청자들을 홀렸던 MBC '해를 품은 달'. 아역들이 인기에 불을 지피고, 김수현이 풀무질을 했다면, 마지막 '대폭발'로 정점을 찍는 것은 정일우의 몫이었다. 왕좌도, 벗도, 사랑도 모두 훤에게 양보해야 했던 '비운의 태양' 양명. 장렬한 죽음으로 양명과 작별한 정일우의 오른 손가락에는 '그날'이 남긴 영광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처음부터 양명이 죽을 걸 알고 있었죠. 임팩트 있는 장면이라서 제가 가진 에너지를 남김 없이 쏟았어요." 김도훈 PD가 "정일우는 나날이 성장하는 배우"라고 감탄하는 이유, 그리고 양명 캐릭터와 그의 반전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눈빛과 지문, 말줄임표까지 신경썼어요"
양명을 살려내라고 김도훈 PD에게 생떼를 부리고 싶을 정도로, 정일우가 그려낸 양명의 비극성은 탁월했다. 이렇게 잘할 거면서 처음엔 출연을 망설였다고 하니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제가 양명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사극이 부담되기도 했고요. 대사나 몸짓을 표현하기가 아무래도 어렵죠." 첫 사극 '돌아온 일지매'에서 겪었던 연기력 논란을 극복해야겠단 생각도 이번 작품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 그래서 정일우는 무섭게 대본을 파고들었다. "'거침없이 하이킥' 출연할 때, 이순재 선생님께서 절대로 애드리브하는 배우는 되지 말라고 가르쳐주셨죠. 그래서 저는 대본에 굉장히 충실한 편이에요. 이 작품은 대사 못지 않게 지문 연기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말줄임표 하나까지 신경썼어요." 여러 여자를 쓰러뜨렸던 양명의 아련한 눈빛도 그 노력의 결과다. '해품달' 촬영에 앞서 정일우의 연기를 다듬어준 나문희, '본방사수'를 하며 응원을 보낸 '49일'의 소현경 작가도 고마운 사람으로 꼽는다. "정말 '미친듯이 열심히' 연기했다"는 정일우의 얘기를 들으니, 그와 작품을 함께했던 사람들이 왜 이렇게 그를 아끼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김수현과의 연기, 기싸움 대단했죠"
'해품달'의 양명을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라이벌 훤. 또래 남자배우와 연기하는 것도 정일우에겐 큰 경험이 됐다. 반란군이 던진 창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양명의 최후보단 김수현과 독대하는 장면들이 정일우의 기억에 남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수현이랑 서로 칼을 겨누거나 대립하는 장면들에선 더 열심히 연기하게 되더라고요. 은근히 기싸움도 하고요. (웃음) 카메라 밖에선 까불고 장난 치다가도 촬영만 들어가면 갑자기 서로 노려보니까 스태프들이 '너희들 뭐냐'라며 웃기도 했어요.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수현이의 노력도 만만치 않던데요." 두 남자의 라이벌전에서 연우는 훤을 택했지만, 한가인, 김민서, 전미선 등 여배우들은 훤보다는 '쾌남아' 양명을 이상형으로 꼽았다. 정일우에게 화답을 해달라고 하니 "저는 이분들이 전부 다, 모두 다 좋아요"라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역시 쾌남아답다.
"이번 학기엔 학사경고 맞으면 안 돼요"
지난 해 드라마 '49일'부터 '꽃미남 라면가게'와 '해품달'까지 연달아 출연하며 쉬지 않고 달려왔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에게 쉬고 싶지 않냐고 물으니 고개를 가로 젓는다. "'하이킥' 할 때 몸이 워낙 안 좋아서 쉬고 싶단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그런데 여러 사정이 생겨서 진짜로 1년간 쉬게 되더라고요. 이젠 기회가 왔을 때 잡고 싶어요. 2010년에 연극에 출연하며 63회차를 혼자서 감당했던 것도 생각이 바뀐 계기였어요. 작품을 많이 할수록 실력이 늘어난다는 걸 몸으로 경험했거든요. 혹시 실패하더라도 젊을 때는 다 약이 되잖아요." 차기작도 곧 결정할 거고, 앞으론 해외 팬미팅과 프로모션도 부지런히 다닐 계획이다. 무엇보다 당장 학교 수업 때문에 바쁘다. 그는 현재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동안 휴학 한번 안 했어요.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많이 빠져서 학사경고도 맞았죠. 이번 학기엔 공부 열심히 해야 해요. (웃음)" 성적표 얘기에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던 정일우는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3월의 캠퍼스로 달려갔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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