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망이 흔들리면 어김없이 손가락 4개를 좍 펼친다. 자신과 부인, 아들, 딸이 골 세리머니에 담겨 있다.
"가족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시즌 초 힘들었을 때도 기운을 낼 수 있게 해준 존재다. 나는 언제나 네개의 손가락으로 골 세리머니를 한다. 네개의 손가락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나의 가장 큰 팬이다." 지난해 8월 13일 전남전(1대0 승)에서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을 터트린 후 토해낸 격정이다.
몰리나(32·서울), 지난해 초 세리머니도 잃고, 세월도 잃어버렸다. 콜롬비아 출신인 그는 2009년 K-리그에 둥지를 틀었다. 성남에서 두 시즌을 보냈다. 50경기에 출전, 22골-11도움을 기록했다. 2010년 성남을 아시아 정상(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특급 용병으로 평가받았다. 아시아가 무서워했다.
지난해 변화를 줬다. FC서울로 이적했다. 기대가 컸다. 실망도 컸다. 몰리나는 없었다. 이름값이 무색했다. 겉돌았다. 7월까지 그는 정규리그 18경기에 출전, 3골-4도움에 불과했다. 팀에 녹아들지 못했다. 원톱 데얀과 엇박자를 냈다. 국내 선수들과도 호흡이 맞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감독대행에 오른 최용수 감독이 신태용 성남 감독에게 '몰리나 활용법'에 대해 자문을 구할 정도로 '먹튀'로 전락했다.
8월을 기점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후반기 11경기에선 7골-8도움을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다.
◇몰리나가 선제골을 터뜨린 후 가족을 향해 손가락 4개를 펼치며 기뻐하고 있다. 상암=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올해 그는 완벽하게 변신했다. "괌에서 시작된 동계전지훈련부터 누구보다 땀을 많이 흘렸고, 불평없이 따라와 주었다. 몰리나의 스피드나 생각의 속도는 K-리그에서 앞지를 선수가 없다. 앞으로 더 기대가 되는 선수다." 대행 꼬리표를 뗀 최 감독의 평가다.
더 이상 시즌 초반의 아픔은 없다. 대구와의 개막전(1대1 무)을 필두로 전남, 대전전(이상 2대0 승)에서 3경기 연속 골을 터트렸다. 19일 대전전에서 멀티골을 작렬시켰다. 두 차례나 손가락 4개를 좍 펼쳤다. 그는 4골로 라돈치치(수원)와 함께 득점 부문 공동 선두에 올랐다. 3경기 만에 지난해 7월까지의 기록을 앞질렀다. 도움도 1개를 기록했다.
간판 스트라이커 데얀이 몰리나에 묻힌 형국이다. 그렇다고 데얀이 샘을 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시작이 굉장히 좋다. 몰리나가 잘 해주면 자연스레 상대 수비도 그에게 몰린다. 다른 동료들에게 많은 기회를 열어줄 것이다. 그의 활약에 늘 기쁘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몰리나는 화려한 기록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난 득점왕을 거머쥐는 유형의 선수가 아니다. 동료에게 어시스트를 하거나 좋은 패스를 넣어주는 것이 특징이다. 내가 골을 넣는 것보다 도와서 팀이 승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개막전에서 데얀의 태업 논란으로 어수선했다. 위기는 한 번으로 족했다. 최용수호는 더 건강해졌다. "팀에 대한 믿음이 있다. 작년에는 팀 분위기를 잘 몰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후반기부터 팀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좋은 분위기를 이어서 올해는 꼭 우승컵을 탈환하겠다." 2연승을 이끈 주인공은 몰리나였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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