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얼굴 그림을 들이밀며 '속을 채워달라'고 하니 김수현의 날렵한 눈매가 초롱초롱 빛난다. 열심히 '뇌구조'를 그리는 김수현의 모습에서 "대본에 모든 답이 있다"며 치열하게 대본을 파고들던 그의 무시무시한 집중력을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아이고, 진짜 어렵네"라고 머뭇거리더니 제일 먼저 그려넣은 건 역시나 '잠'. 머리 전체를 둘러싸고 길쭉하게 자리 잡았다. 그리곤 뒤쪽부터 차례로 채워지는 건 훤과 형선과 운. 삼총사는 언제나 한 묶음이다. "일우가 삐치겠네" "연우가 없으면 안 되지"라더니 앙명과 연우도 머리 속 중심에 그려넣는다. "'드림하이' 때와는 또 다르게, '해품달'을 통해 연기하는 또래 배우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정일우와도 소중한 친구가 됐죠. 서로 정말 잘 맞아서 다음에 다른 작품에서 또 만나자는 얘길 많이 했어요." 연우를 연기한 한가인과 '드림하이'의 파트너 수지는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아역과 성인으로 만나게 됐으니 김수현의 기분도 묘할 듯하다. 누가 이상형에 가깝냐고 물으니 "두 여자 다 사랑합니다"라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촬영 내내 김수현을 괴롭혔던 추위와 배고픔 아래로는 '그 외'가 그려졌다. '그 외' 치고는 좀 큰데, 거기엔 김도훈 PD, 작가, 스태프 등 그리운 얼굴이 모두 담겨 있단다. "그리다 보니 역시 '해품달'로 채워지네요. (웃음)" 이 말이 아니어도 김수현이 아직 캐릭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증거는 뇌구조에서 유일하게 '점'으로 콕 찍은 곳이 바로 '나', 김수현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김수현에게 '해품달'은 이렇게나 존재감이 컸다.
마지막으로 비방용이라던 그의 개그감이 폭발했다. "엇! 그림이 너무 징그럽군요! '추위' 부분은 마치 얼굴의 눈 같은데요." 아뿔싸, 두꺼운 펜을 준비한 기자 탓이다. 미안해요, 수현씨.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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