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라서 많이 배웠다."
37년차 배우 윤석화(56)의 얘기다. 1975년 데뷔한 후 국내 대중문화예술계에 큰 획을 그어온 그녀다.
"배우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에 대한 생각은 없었어요. 배우란 직업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건 제 스스로가 많이 배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누군가가 나에 대해 좋게 말해준다면 그건 다 무대에서 배운 거예요."
"배우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알 듯 말 듯한 표현이다. 무슨 뜻일까? "관객들에게 보여지기 전까진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 돼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의 모습만 보기 십상이지만, 그 뒤안길은 정말 사람 이하예요. 대신 그런 인간 이하의 과정을 거쳐서 스크린이나 무대에서 빛나는 순간, 관객에게 감동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주기 때문에 사람 이상이 되는 거죠."
영화 '봄, 눈'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이 작품이 윤석화의 연기 인생을 통틀어 겨우 두번째 영화라는 점. "오랜만의 영화인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야 비로소 첫 영화를 하는 것 같아요. 1987년에 '레테의 연가'란 영화를 찍을 땐 제 목소리로 녹음을 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땐 후시녹음이었는데 제 목소리가 빠진 영화는 상상할 수 없잖아요."
영화 출연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했다. "요즘 연극배우를 거친 좋은 연기자들이 영화에 많은데 저는 어쩔 수 없이 선배니까 연극을 지켜야지라는 책임감을 다하는 사이에 나이가 점점 든 것 같아요. 사실 영화 두 편 정도는 하려고 했었는데 영화는 연극과 달리 여러가지 사정 때문에 크랭크인이 늦어지기도 하잖아요. 그러다보니 못하게 됐죠."
'봄, 눈'은 암 선고를 받은 엄마 순옥과 가족들의 마지막 이별을 통해 눈물 속 행복과 희망을 그린다.
"영화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진심으로 작업을 했어요. 그 진정성이 관객들에게 전달이 될 것이라 생각해요. 보는 사람들마다 평가 기준이 다르겠지만, 실망시킬 것 같지는 않다는 예감이 들어요."
지난 9일 열린 시사회에 참석한 윤석화는 곧장 영국으로 향해야 한다. "아이들도 봐야 하고 벌려놓은 일도 마무리해야 한다"며 웃었다.
윤석화는 영국 런던에서 연출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누비고 있는 런던의 웨스트엔드는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함께 세계 최고의 공연 무대로 꼽힌다. 배우로서도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지난 1992년 국내에서 초연했던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웨스트엔드 무대에 오르는 것.
"아직 결정은 안했어요. 무대에 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한 거죠. 웨스트엔드 무대에 선다면 그곳 사람들로부터 '야, 한국에 저런 배우가 있었나. 우리에게 없는 배우를 저들은 가지고 있구나'란 소리를 듣고 싶어요. 영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영어 스피치 코치를 한 달 동안 받을 거예요. 제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하면 깨끗하게 접을 거예요.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면 해내야죠."
정해욱 기자 amorr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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