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없다."
LG 김기태 감독이 처음으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17일 청주 한화전에서 패한 뒤 구단 직원에게 "할 말이 없다"는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경기장을 떠났다. 무엇이 할 말을 잃게 만든 것일까.
사실 김 감독은 패배에도 변명하거나 선수 탓을 하는 법이 없다. 감독의 말 한마디에 선수들이 기가 죽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지난 11일 롯데와의 홈 개막전에서 첫 패배를 당하고도 "선수들은 열심히 해줬다. 홈 개막전에서 이기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마무리투수 리즈의 16연속 볼로 무너진 13일 KIA전에서도 그랬다. "결과가 좋지 못해 선수들과 팬들에게 미안하다"며 오히려 자책하는 모습이었다. 승리를 날려버린 리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 감독은 선수들의 실수를 농담으로 승화하며 자신감을 불어넣곤 한다. 하지만 이날 패배는 달랐다. 감독으로서 한숨이 나올 만 했다. LG는 최하위 한화에게 패하면서 4승4패, 승률 5할로 내려갔다. 첫 등판에서 호투한 박찬호와 상대 에이스 류현진이 18,19일 경기에 선발로 대기하고 있었기에 이날 경기는 반드시 잡고 가야했다.
구체적인 내용도 좋지 못했다. 이날 LG는 두차례의 베이스러닝 미스만 없었다면 경기를 잡을 수도 있었다. 4번타자 정성훈의 솔로포로 1-1 동점이 된 2회초 1사 후 이병규(배번7)는 내야안타로 1루를 밟았다. 오지환의 타석 때 2루를 훔치기도 했다. 평소 도루가 많지 않은 이병규였기에 허를 찌른 베이스러닝이었다.
하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오지환의 높이 뜬 타구가 1루수와 2루수 키를 넘어 애매한 곳으로 날아갔다. 이병규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3루로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공은 2루수 한상훈의 글러브에 들어갔고, 뒤늦게 돌아온 이병규는 2루에서 아웃되면서 순식간에 이닝이 종료됐다.
사실 1사였기에 좀더 여유있게 타구를 바라본 뒤 움직였어도 되는 상황이었다. 한화 선발 양 훈의 제구가 전체적으로 높았고, 홈런을 맞은 뒤 흔들리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LG로선 달아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친 셈이 됐다.
LG 타선은 4회초 양 훈을 두들겨 대거 5득점하며 승기를 잡나 싶었다. 하지만 임찬규도 4회말 똑같이 5실점하며 6-7이 됐다. 9회초 LG의 마지막 공격, 한화 마무리투수 바티스타가 사구와 보크, 볼넷으로 흔들리며 1사 1,2루 찬스를 맞았다. 이때 터진 이진영의 중전안타. 발이 느리지 않은 서동욱이라면 충분히 홈에서 승부를 볼 만 했다. 하지만 2루주자 서동욱은 3루에서 멈췄다. 스타트가 늦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신중한 베이스러닝이 일을 그르쳤다. 서동욱은 타구를 본 뒤 잠시 멈칫하고 스타트를 끊었다. 타구 판단이 정확했다면, 그리고 좀더 과감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결국 이어진 1사 만루서 정성훈의 병살타로 경기는 그대로 종료됐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두차례의 주루 미스만 없었다면 김 감독은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LG는 전지훈련 내내 수비와 주루에서 한 베이스를 막고, 한 베이스를 더 가는 플레이를 강조했다. 김 감독이 실망한 채 경기장을 떠날 수 밖에 없던 이유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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