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내가 융화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밖에 안된다는 거냐?"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신한은행 임달식 감독의 목소리는 착잡했다. 팀의 통합 6연패, 2009년부터 한국 여자농구 국가대표팀을 맡아오면서 체코 세계선수권대회 8강,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 2번의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준우승 등 국내외에서 인정받았던 지도력은 단번에 무시당했다. 심지어 자질까지 들먹거렸다. 임 감독은 "누구도 나가지 않으려 할 때는 '우승팀 감독이 나가야 한다'며 등을 떠밀었던 사람들이 이제 와선 '지도력과 자질이 떨어진다'며 내쳤다. 지도자로서의 명예를 한번에 무너뜨렸다"고 토로했다.
지난 18일 대한농구협회(협회장 이종걸)는 4번의 강화위원회와 이사회를 거듭한 끝에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에 나갈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 감독 대신 삼성생명 이호근 감독을 내정했다.<4월19일자 스포츠조선 보도>
협회는 "지난해 열린 아시아농구대회에서 준우승에 그쳐 런던올림픽 직행 티켓을 놓친 것이 교체의 이유"라며 경질론을 내세운 한편 "팀 분위기 쇄신이 필요했다. 이 감독은 융화력이 뛰어나다"며 자질까지 거론했다. 반대로 얘기하면 임 감독은 실력도, 융화력도 떨어진다는 말이다. 협회의 외교력 부재로 거센 중국 텃세를 막아내지 못해 대회 때마다 당하는 편파판정 얘기는 쏙 들어갔다. 리그 우승팀 감독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또 자질이 떨어졌다면 아예 쓰지 말았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대회에선 등을 떠밀다가, 공교롭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올림픽이 되자 단칼에 내쳤다.
문제는 협회에서 이미 임 감독에게 감독 연임에 대한 언질까지 줬던 것. 하지만 감독을 교체한 후 임 감독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팀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사회 내의 이른바 쇄신파들은 평소 임 감독과 대립각을 세워왔던 사이다.
쇄신파는 협회 진성호 부회장, 중고농구연맹 박소흠 회장, 정미라 기술이사 등 3명이다. 몇몇 농구 관계자는 "진 부회장과 박 회장이 2009년 임 감독에게 정 이사를 대표팀 코치로 써달라고 했는데, 이를 임 감독이 거절한 후 사이가 틀어졌다"고 증언했다. 임 감독은 그동안 열악한 대표팀 지원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 역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개인 악감정과 '괘씸죄'가 대표팀 감독 선임이라는 중차대한 일보다 우선한 셈이다.
이에 대해 정미라 이사는 "두 분이 2009년 코치직 제안을 했던 것은 맞지만, 내가 이를 고사했다"며 "개인적 악감정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정적인 교체 사유가 있는데, 밝히긴 힘들다. 협회 차원에서 회의를 거친 후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러나 임 감독에게 감독 언질을 한 부분은 정말 몰랐다. 그렇다면 협회가 잘못한 것이다. 임 감독에게 사과를 해야한다"며 당혹스런 반응이다. 회의에 참석한 이사들의 발언도 엇갈린다. 강화위원회 신동파 위원장은 임 감독에게 "나는 원칙대로 하려 했으나 쇄신파의 주장이 너무 강했다. 미안하다"며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를 전해들은 정 이사는 "위원장께서 최종 결정을 내리셨다. 위원장이 우리 의견을 반대했다면 감독 교체도 없었을 것"이라며 펄쩍 뛰었다. 일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협회는 20일 대책 회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임 감독은 "그동안의 고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허탈한 기분이다. 밝히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나한테라도 속시원히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대표팀을 맡느냐 안 맡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협회의 납득할만한 설명을 듣고싶다"고 토로했다.
만약 이번 일이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갈 경우 협회는 '밀실행정'을 했다는 오명을 씻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팀 경기력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이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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