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인 이유는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엔 개인적 악감정이 '불화음'이라는 단어로 포장돼 있었다.
여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파문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있는 대한농구협회(협회장 이종걸)는 회의를 거듭하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각성을 간과한 채 논란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문제가 봉합되지 않을 경우 열흘여 앞으로 다가온 대표팀 소집과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에서의 경기력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여자 프로농구단 신세계의 해체로 흔들거리고 있는 한국 여자농구가 이번 사태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불편한 감독?
협회 강화위원회에서 신한은행 임달식 감독의 대표팀 감독 유임을 가장 강력히 반대한 정미라 기술이사는 19일 스포츠조선과의 통화에서 "감독 교체의 결정적 이유가 있지만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정 이사가 털어놓은 결정적 이유는 좀처럼 수긍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적 악감정과 괘씸죄라는 기존 의혹만 증폭시켰다.
지난 22일 만난 정 이사는 "임 감독이 지난 3년간 대표팀을 이끌면서 선수 부족이라는 이유로 훈련 철수, 소속팀 선수인 하은주의 일방적인 귀국 결정, 대표팀 선수단의 화물용량 초과로 인한 오버차지 등 협회와 '불화음'을 냈다. 이것이 결정적 이유"라고 밝혔다.
하지만 훈련 철수의 경우 선수가 5명밖에 소집되지 않아 당시 강현숙 기술이사와의 협의 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해 일본 나가사키에서 열린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하은주가 발목부상을 당해 신동파 강화위원장과의 협의 끝에 한국으로의 귀국 조치가 내려졌으나, 이후 부상 호전으로 대회 끝까지 경기에 뛸 수 있었다. 게다가 화물용량 초과는 임 감독과 직접 연관이 없는 내용이다. 어느 하나 납득할만한 사유가 아니다.
정 이사는 "강화위원회에 앞서 열린 이사회의 전체적 분위기는 임 감독이 '불편하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감독 역량과는 상관없이 협회와 '불편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가"라고 기자가 재차 묻자 서둘러 정 이사는 "아니, 그냥 내 느낌이었다"며 얼버무렸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미 감독을 교체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공교롭게 정 이사는 지난해 중순 강현숙 기술이사가 KBL 심판위원장이 되면서 자리를 물려받아 협회에 입성, 지나간 얘기를 전해들은 사람이다. 전임자들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고 오히려 협회의 치부였던 것을 정 이사는 '침소봉대'한 셈이다. 협회 김상웅 전무이사도 "이는 당시에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잉태된 비극
문제의 발단은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을 뽑는 구조에서 비롯됐다. 협회와 KBL의 구성원들이 적절히 배합된 남자농구 국가대표협의회(국대협)와는 달리 여자농구는 협회 강화위원회에서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런데 이 위원회에 애초부터 임 감독과 대립각을 세웠던 정 이사를 비롯한 협회 진성호 부회장, 중고농구연맹 박소흠 회장 등 3명이나 포함돼 있었던 것. 7명 가운데 3명은 절대 다수다.
이들과 임 감독의 악연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진 부회장과 박 회장이 2009년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2010년 체코 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 정 이사를 코치로 데려갈 것을 부탁했으나 거절당하자 악감정이 싹튼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는 "개인적 감정은 없었다"면서도 "나머지 두 분의 생각까지 나는 모른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코치 추천이 왜 부탁이냐"고 반문했다. 협회의 권리를 임 감독이 침해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정 이사는 오히려 기자에게 "임 감독 구명운동을 하고 있냐?"고 따지며 "위원회에서 4대3의 다수결로 결정된 사항이다. 내게 책임을 묻지마라. 만약 그렇다면 최종 결정을 내린 신동파 위원장의 '직무유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협회 사정을 잘 아는 농구인 A씨는 "위원회 구성에서 비극은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애초부터 설계가 잘못됐는데, 여기서 나온 나온 결과를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냐"며 "악감정이나 괘씸죄가 아니라면 오히려 국내외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임 감독을 뽑아야 하는 것 아니냐. 자기네 말을 안듣는 사람을 내친 것 밖에 안된다"고 강조했다.
농구인 B씨는 "능력 검증이 안된 정미라 이사의 선임부터가 문제다. 원리와 원칙은 무너졌다"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정 이사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하루빨리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져야한다.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가서는 절대 안된다"고 말했다.
정 이사는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조광래 감독을 개인적으로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 감독이 쓴 소리를 많이 했기에 대한축구협회로부터 해임됐다는 것은 분명 억울한 일이라고도 했다. 조 감독과 임 감독의 케이스가 무엇이 다른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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