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 올해는 '넥센 포비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LG는 지난해 9년 연속 4강 진출 실패라는 아픔을 맛봤다. 시즌 초반 잘 나가던 LG의 발목을 잡은 팀은 다름아닌 넥센. 넥센이 LG의 4강행을 막았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LG는 7승12패로 넥센만 만나면 작아졌다. 넥센은 LG를 상대로만 유일하게 5할 승률을 넘어서며 우세를 점했다.
정말 이상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봤을 땐 누가 봐도 LG의 우세였다. 하지만 넥센 선수단은 경기 막판까지 끈질긴 모습을 보였다. 19경기 중 9차례가 1점차 이내 승부였고, 5번이나 연장을 치렀다. 넥센은 1점차 승부에서 6승3패, 연장전서 4승1패로 LG를 압도했다.
24일 잠실구장. 두 팀의 첫번째 맞대결에서도 지난해 분위기는 이어졌다. 3-3으로 팽팽하던 연장 12회초 2사 이후, 넥센 타선은 화력을 쏟아내며 7대3으로 승리했다. 이번 시즌 내내 이어질 분위기를 좌지우지할 중요한 매치를 가져갔다.
사실 지난해 두 팀의 구도는 첫 경기 영향이 컸다. 정확히 이맘때였다. 4월29일 잠실에서 두 팀은 첫 맞대결을 펼쳤다. LG는 2회부터 3점을 선취하며 쉽게 주도권을 잡았다. 6회엔 타선 폭발로 8-2까지 앞서갔다. 7회 1실점했지만, 승리는 떼 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LG는 9회초 귀신에 홀린듯 넥센에 4점을 내줬다. 8대7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찝찝했다. 소위 '말리는' 현상을 경험했다. 반대로 넥센 선수들은 '별 거 아닌데?'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야구는 멘탈스포츠다. 이후 LG는 마치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게 된 투수 마냥 '넥센 증후군'에 시달렸다. 리드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연장전 허용-접전 끝 패배의 패턴이 이어졌다. 시즌이 계속될수록 넥센 선수들은 입을 모아 "LG엔 질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뒤져 있어도 금방 따라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넥센과의 첫 경기를 앞둔 김기태 감독에게 넥센 상대 징크스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그는 미소를 지으며 "그런 일이 있었냐?"고 반문했다. 올시즌 만큼은 지난해처럼 말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선수단에 넥센에 대해 특별히 주문하면 오히려 독이 될 것 같다고도 했다.
올시즌 새로이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에겐 남의 나라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선 그도 절박한 모습을 드러냈다. 0-3으로 뒤진 5회말 LG는 서동욱의 좌전안타와 상대 실책으로 무사 2루의 찬스를 맞았다. 지금껏 김 감독이 보여준 모습이라면 강공을 지시할 만 했다. 하지만 사인은 번트였다. 이 찬스를 놓치면 이날 경기, 나아가 시즌 내내 흐름을 뺏길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타석에 있던 유강남의 번트타구는 두차례나 파울이 됐다. 볼카운트 1B2S. 이때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스리번트가 나왔다. '실패=OUT'이라는 위험까지 감수할 만큼 절박했다.
작전은 적중했다. 김재율의 유격수땅볼 때 서동욱이 홈을 밟아 첫 득점을 올렸다. 이후 이대형의 중전안타와 이병규(배번7)의 좌익수 키를 넘기는 2루타로 3-2까지 쫓아갔다. 단순히 첫번째 득점만이 아니라 타선의 응집력을 이끌어낸 스리번트였다.
6회 터진 오지환의 동점 솔로포에 힘입어 경기는 연장으로 흘러갔다. 팽팽하던 경기는 12회초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결정됐다. 2사 후 허도환의 중전안타로 불씨를 지핀 넥센은 오재일과 정수성의 2루타, 두차례의 실책 그리고 이택근의 2루타로 대거 4득점해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LG의 모습은 과거 '모래알'이라 불리던 시절을 연상케 했다. 외야수들을 잇따라 만세를 불렀고, 내야에선 평범한 땅볼을 놓치고 견제구가 뒤로 빠져나갔다. 혈전 끝에 긴장이 풀리자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맥빠진 경기력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사실 9회말 승부가 결정났어야 했다. 2사 만루에서 LG 이진영이 날린 안타성 타구를 넥센 좌익수 장기영이 잡아냈다. '끝내기 세리머니'를 준비하고 있던 LG 선수단은 허탈해 했다.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첫 경기부터 '말리는' 현상을 경험한 것이다.
LG로서는 앞으로가 중요하다. 이날 패배를 곱씹으며 후회하지 말고 전진해야 한다. 만약 24일의 패배를 잊지 못한다면, 시즌 내내 넥센에게 시달린 지난해 악몽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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