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승 1위를 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25일 현재 투수 개인기록 순위표에는 다승 1위가 4명이다. 나란히 3승을 올린 롯데 이용훈, 두산 임태훈, LG 류택현, 넥센 나이트다. 이용훈이 구원승이 2승 있긴 하지만, 그 역시 선발요원. 류택현은 순수 불펜투수임에도 다승 1위에 올라있다.
류택현은 매경기 투수 최다경기 출전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SK 조웅천 코치(813경기)의 기록을 넘어 817경기까지 올라섰다. 그에겐 구단의 반대에도 자비로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테스트 끝에 재입단한 우여곡절도 있었다. 이런 그가 안타깝게도 지난 25일 갈비뼈 부상 탓에 재활군으로 내려갔다.
어쨌든 시즌 초반을 의미있게 보냈다. 류택현은 엔트리 말소가 결정된 뒤 "복귀하는데 3주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몸관리 잘해서 빨리 1군에 돌아오겠다"며 웃었다. 94년 데뷔해 수많은 시즌을 경험했지만, 올해처럼 설레고 떨렸던 적은 없었다. 다승 1위 타이틀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쑥스러운 구원승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곧바로 '자신이 다승 1위에 오른 이유를 아냐'는 질문이 날아왔다. 별 생각없이 '등판 상황이 홀드나 세이브를 기록할 상황이 아니지 않았나'라고 답하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류택현이 꺼낸 이유는 좀 특별했다. 그는 "내가 이닝을 마무리하고 내려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거 류택현의 등판 패턴을 떠올려 보면 답이 나온다. 그는 완벽한 왼손 원포인트 릴리프였다. 흔히 말하는 '좌우놀이'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였다. 마치 일수찍듯 거의 매일 마운드에 올랐다. 위기상황에서 좌타자가 나오면 어김없이 마운드에 올랐다. 위기가 아니더라도 왼손이면 언제든 류택현을 불렀다.
물론 이와 같은 '좌우놀이'가 그를 최다경기 출전으로 이끌기도 했다. 류택현은 "나 뿐만 아니라 모든 불펜투수들이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닝을 채우고 마운드를 내려간다. 사이드암투수가 좌타자를 상대하고, 내가 우타자와 맞붙는 일이 많지 않나"라고 말했다. LG 불펜의 산증인인 류택현의 '좌우놀이 종식'에 대한 증언이다.
LG는 선발진이 약하다. 그렇다고 뒷문이 강한 건 아니지만, 역설적으로 불펜야구를 펼쳐야만 한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어긋남없이 완벽하게 맞물려가고 있다. 류택현은 "불펜투수들이 많이 등판하는 것 같아도 철저하게 휴식일을 지켜준다. 아예 휴식일이면 스파이크도 신지 않고 덕아웃에 편안히 앉아 있다"고 밝혔다.
보통의 불펜투수들은 언제든 마운드에 올라갈 수 있도록 몸을 자주 푼다. 설사 등판기회가 오지 않더라도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이런 부분에서 생각보다 많은 체력이 소요된다. 그런데 올시즌 LG는 근무조와 휴식조를 철저하게 나눠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운용하고 있었다.
그는 경기 때 스파이크를 신는 것과 운동화를 신는 것(등판대기 없이 휴식)의 차이점을 일반 직장인에 비유했다. 출근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제든 재택근무할 준비를 하는 것과 휴가를 내고 놀러가는 것처럼 천지차이라고 했다. "이런 기분, 느껴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그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류택현은 불펜투수를 '배터리'에 비유했다. 마냥 쓰면 방전되고, 주기적으로 충전을 시켜줘야하는 게 완벽히 닮았다고 했다. 그는 "몸이 괜찮았을 때 한 시즌에 80경기 이상씩 던졌다. 하지만 올시즌엔 부상없이 풀타임을 뛰었어도 70경기가 안됐을 것 같다"며 "우리팀 불펜은 이래서 강하다"고 했다. 작은 변화가 LG의 초반 상승세를 이끈 불펜야구의 원동력이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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