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해보겠다."
KIA 선동열 감독의 올 시즌은 어떤 면에서는 인내심과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 기량을 만개하지 못한 유망주들의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해 끝까지 기회를 제공하려는 생각이다. 비록 시즌 초반 팀 성적이 좋지 못하지만, 선 감독은 보다 큰 관점에서 젊은 선수들을 키우기 위해 참고 또 참는다. 그런 '인내'가 작은 결실을 맺을 조짐이다.
바로 신인투수 박지훈과 만년 유망주 신종길이 서서히 기대에 부흥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28일 잠실 두산전에서 그 단초가 보였다. 더불어 선 감독이 시즌 초 말했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해보겠다"는 말이 어떤 형태로 실전에 나타나는 지가 잘 드러났다.
KIA는 이날 초반부터 두산과 점수를 주고 받으며 혼전을 벌였다. 그러다 4-6으로 뒤진 7회초 안타 2개와 볼넷 3개(고의4구 1개), 희생플라이 2개와 상대 내야실책 1개 등으로 4점을 쓸어담으며 역전에 성공했다. 이 시점이라면 '지키는 야구'가 발동돼야 한다.
미소만 지은 SUN, 박지훈의 심장을 키우다
그런데 선 감독은 2사 2루에서 손영민을 내리고 신인 박지훈을 투입했다. 2점차 리드에서 신인투수에게 중책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박지훈은 첫 상대 김현수에게 중전적시타를 맞아 승계주자 득점을 허용했다. 이어 김동주에게도 안타를 맞아 2사 1, 3루를 만들고 만다. 벤치가 움직일 타이밍이다.
그러나 선 감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알듯 모를듯한 미소만 띈 채 박지훈을 계속 던지게 했다. 이어 박지훈이 대타 이성열을 볼넷으로 내보내 2사 만루 역전위기에 놓였지만, 그때도 선 감독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4연패 중이라는 힘든 상황속에서도 움직이지 않은 것은 박지훈의 성장을 위해서였다. 이 엄청난 위기를 넘어서면 한 단계 이상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선 감독은 "길게보면 젊은 투수들이 성장해줘야 한다"고 말해왔다. 연패를 끊기 위해서는 다른 투수를 투입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박지훈은 상실감만 안은 채 마운드를 내려가게 된다. 선 감독이 이날 보인 신뢰는 어떤 면에서는 팀의 1승과 신인투수의 성장을 양쪽에 내건 승부수였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의도는 결과적으로 성공이었다. 박지훈은 2사 만루의 위기를 맞이했지만, 양의지를 3루수 파울플라이로 잡아내며 승기를 지켜냈다. 벤치로 돌아가는 박지훈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고, 동료들은 뜨거운 호응으로 그를 감싸줬다. 이 한 경기로 박지훈이 당장 필승계투조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프로 입단 후 가장 값진 경험을 쌓은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7푼 짜리 타자 신종길, 자신감을 되찾았다
박지훈에 이어 선 감독의 신뢰는 '만년 유망주' 신종길에게까지 이어졌다. 신종길은 선 감독이 부임 이후 가장 크게 기대한 인물이다. 빠른 발에 장타력까지 겸비했다고 평가하면서 시즌 개막을 앞두고 주전 2번타자로 낙점했었다. 그러나 신종길은 그 기대감에 오히려 위축됐다. 결국 개막 이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27일까지 규정타석(43타석)을 채운 타자 중 최저타율(7푼7리)에 머물러있었다. 1할도 안되는 타자였지만, 선 감독은 신뢰를 버리지 않았다.
여전히 효용가치가 많다고 평가한 선 감독은 28일 경기에 7회말 대주자로 신종길을 내보냈다. 전날에도 선발로 나와 삼진만 3개를 당했던 신종길이다. 그러나 선 감독은 신종길에게 어떤 질책도 하지 않았다. 부진에 대한 책임감은 오히려 신종길이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늘 "시즌은 아직 길다. 최후에 내가 어떤 기록을 남기는 지 지켜보라"며 부진탈출의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각오는 바로 다음 이닝 첫 타석에서 결실을 맺었다. 8-7로 간발의 리드를 이어가던 8회초 1사 후 첫 타석에 들어선 신종길은 두산 김상현으로부터 우중월 솔로홈런을 뽑아냈다. 올 시즌 첫 홈런이자 지난 13일 잠실 LG전 이후 보름 만에 기록하는 안타였다. 펜스를 넘어가는 타구를 바라보는 신종길의 두 눈에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돌아와 있었다.
잠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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