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야구선수들이 종종 하는 말 중에 '공 하나에 인생이 바뀐다'는 게 있죠. 사실 그런 공이 기억에 남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야구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등판 때마다 개인통산 투수 최다 출전 기록을 이어나가며 전설이 돼가고 있는 LG 원포인트 릴리프 류택현에게도 그런 공 하나가 있었다고 해요.
"2002년 5월, 지고 있던 경기였어요. 전 패전처리였는데, 그 경기가 갑자기 뒤집힌 거에요. 투아웃에 승리조였던 최창호 선배가 팔을 풀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대신 제가 올라가게 됐어요. 영화 실미도에 나오는 대사처럼 '누가 불러 주는 곳도 없고, 갈 데도 없고' 해서 던지고 싶은 공 하나만 딱 던져보고 내려가자는 마음이 들었죠. 긴장되는 순간! 그때 딱 커브를 던졌는데, 대반전이 일어났어요. 그게 통하더라구요. 그 이후로 계속 경기에 나갈 수 있게 됐어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던 평범한 투수가 던진 커브 하나가 인생을 변화시켰던 거에요. 94년 데뷔한 류택현 선수는 현재 최다경기 출전 기록을 이어가고 있지만 최근 2년 동안엔 마운드로 돌아오는 길도 험난했어요. 20개월의 공백이 있었거든요.
"작년에 선수 관두고 구단에서 일하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그런데 제가 감독님께 코치보다는 선수 쪽이 팀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감독님이 흔쾌히 들어주셨어요. 3월 31일이 보류선수 명단 제출이거든요. 그때 결정할 거니까 맘껏 해보라고, 뒤에서 서포트를 해주신다고 하셨어요. 혼자 미국으로 수술을 받으러 갔죠."
선수들에게 사비로 수술을 받는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죠. 구단이 더이상 활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뜻이거든요.
"앞선 18년을 합친 것 보다 최근 2개월간 나온 제 기사가 더 많은 것 같아요.그래서 후배들에게 마흔 넘어서 수술 한번씩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후회는 없을 테니까."
그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던 마운드에 외로이 섰고, 기대하지 못한 박수와 환호를 받았습니다. 그럼 이제 박수칠 때 떠날 수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복귀했을 때 이젠 절대 '병처럼 깨지고 캔처럼 찌그러지지 말자' 이런 마음이었어요. 유종의 미를 거둘 생각으로 복귀했기 때문에 지금은 내 인생의 보너스를 즐기고 있어요. 이제는 행복하고 즐겁게 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열심히 하고 뛰어야죠. 제2의 삶을 살아야죠."
데뷔 16년 만에 100홀드를 달성했고, 814경기에 출전했지만 여전히 원포인트 릴리프라는 보직은 고단합니다. 아니, 본인도 본인이지만 부모님도 그렇답니다.
"부모님이 경기 보시다가 잠깐 화장실 갔다 오는 사이에 아들이 던지고 내려올 수도 있어요. 집에서 TV로 중계 보시다가 초인종 소리에 잠깐 응대하고 왔더니 그새 제가 등판했다가 내려간 적도 있었대요. 부모님도 놓쳤던 한경기 한경기가 기록으로 남아있으니까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거죠."
그럼 올시즌 첫 등판은 어땠을까요. "혼자 씨~익 웃는거. 뭐라고 해야 하지? 그냥 혼자 웃었어요. 뿌듯하더라구요. 그런 웃음이 나오더라구요. 전 1982년 프로야구가 생긴 해 야구를 시작했어요. 이제 나쁘다고 생각했을 때가 지나서 생각하면 나쁜 게 아니었고, 좋다고 좋은게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나이가 됐네요. 수술 판정받고 방출당하고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니까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이렇게 이야기하네요. "1퍼센트의 가능성만 있다면 해보라고 도전하고 싶어요. 마흔 먹고 방출됐다가 돌어온 저를 보면 다들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누구도 기다려주는 사람 없었던 그 마운드에 류택현은 간절했던 희망 하나만을 품고 돌아왔습니다. 비록 지난 25일 갈비뼈에 실금이 가는 바람에 지금은 잠시 2군에 내려가 있지만, 금세 또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겁니다. 팬 여러분, 혹시 운동장에서 류택현 선수를 보거든 힘내라고 박수 한번 꼭 쳐주시면 어떨까요. <MBC 스포츠+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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