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광주 경기. KIA가 1-0으로 앞선 8회초. 노히트노런 행진을 펼치던 윤석민이 1사 후 손시헌에게 적시타를 허용했다.
1루측 덕아웃에서 선동열 감독이 쏜살같이 마운드에 올랐다. 선 감독은 심각한 표정으로 윤석민과 한참 대화를 나눈 뒤 내려갔다. 요지는 이랬다. "내가 노히트노런 하다 안타를 맞아본 적이 있거든. 지금부터 더 집중해서 던져야 할거야." 국보 투수 출신 선 감독은 현역 시절 수차례 노히트 행진을 펼쳤다. 대기록을 눈 앞에 뒀다 막판에 날리는 허탈한 심정, 누구 못지 않게 잘 안다. 가뜩이나 윤석민은 1점 차 살얼음판 리드를 홀로 지키고 있던 터.
선 감독의 신신 당부가 큰 힘이 됐다. 윤석민은 남은 5명의 타자를 차분하게 범타 처리하며 1대0 승리와 자신의 시즌 첫 완봉승을 지켜냈다. 선 감독은 경기후 "대기록 달성에 못지 않은 흠잡을 데 없는 투구였다"며 극찬한 매조지였다.
윤석민은 이날 경기를 지배한 괴물이었다. 직구(최고 149㎞)와 슬라이더(최고 141㎞)의 투피치로 시원시원하게 두산 타자들을 돌려세웠다. 이날 투구수 108개 중 직구(59)와 슬라이더(39)가 98개에 달했다. 5회까지 단 67개의 공으로 퍼펙트 행진을 펼쳤다. 선 감독은 불안했다. 경기 끝나고 "차라리 안타를 초반에 맞았더라면 싶었다"고 고백했다. 누구 못지 않게 대기록 달성 실패 후유증의 상실감을 잘 아는 그다.
실제 윤석민은 대기록을 의식했다. "5회 끝나고 나서 솔직히 퍼펙트가 의식이 되더라. 그러고 나니 6회 선두 타자 최재훈에게 사구가 나왔다. 8회 들어갈 때 노히트노런을 의식했다. 그러니까 안타를 맞더라"며 웃었다. 하지만 윤석민은 "아쉽지만 이것도 좋은 경험이 아니겠는가"라고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지난달 17일 넥센전 완투승 이후 4경기만의 시즌 2승째. 완투, 완봉을 해야 이긴다고 할 정도로 득점 지원이 박하다. 잘 던지면 상대 투수가 덩달아 잘던진다. 이날도 두산 선발 이용찬이 8이닝 1실점으로 데뷔 첫 완투를 했다. 윤석민은 이날 경기를 포함 4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7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가 마운드에 있는 동안 득점 지원은 13점에 불과했다. 경기당 2.17점이다. 9이닝으로 환산해도 3점에 못 미치는 박한 수치. 하지만 그는 긍정 마인드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는 "시즌 초가 힘들게 지나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우리 타선이 많은 점수를 지원해줄 것 같다. 오늘 만약에 졌더라도 내용에 만족했으니만큼 후회가 들지 않았을 것"이라며 빙긋 웃었다. 의식적인 마인드 컨트롤. 이런 노력은 향후 피칭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투구 패턴도 진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두산전에 5⅔이닝만에 투구수 조절에 실패하며 6안타 2실점하며 물러난 이후 리턴 매치. 윤석민은 "지난 두산전에 맞혀잡으려고 변화구를 다양하게 던졌는데 먹히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직구와 슬라이더 위주로 힘있는 피칭을 했다. 상황에 따라 패턴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경험과 마인드에서 동시에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대한민국 우완 에이스. 그 진화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광주=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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