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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프로축구 '토사구팽' 관행 그리고 한국

by 김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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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연속 우승 샴페인을 터트렸다. 여전히 정규리그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에도 성공했다. 돌아온 것은 '토사구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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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베이징 궈안에서도 그랬다. 2009년 9월 감독으로는 첫 1부 리그 우승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해피엔딩은 없었다. 구단 고위층의 과도한 간섭에 끝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당시 그는 괴로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한 달여후 베이징은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중국 축구 무대에 더 이상 미련이 없었다. 배신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이듬해 3월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2부 리그의 광저우 헝다가 매달렸다. 전폭적인 지원과 선수단 운영 독립을 약속했다. 2010년에는 2부, 2011년에는 1부리그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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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수 광저우 헝다 감독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해탈한 듯한 분위기였다. 무늬는 '합의 사퇴'였지만 사실상 경질이었다. "물러나기로 구단과 최종 합의했어. 기분이야 안 좋지. 근데 홀가분 해. 떠날 사람은 떠나야지."

감독은 물론 선수 계약의 최종 열쇠는 구단이 쥐고 있다. 그래도 상식은 통한다. 우승 감독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시즌 중에 내치는 일은 세계 어느 무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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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프로축구의 후진성이 이번 일로 다시 한번 드러났다. 동업자 정신은 없다. 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독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용 가치가 떨어지는 순간 칼을 휘두른다. '파리 목숨'이다. 지난해 박성화 다롄 감독과 김학범 허난 감독이 시즌 도중 철퇴를 맞았다. 올시즌은 장외룡 다롄 감독이 4경기 만에 사임했다. 올초 조광래 전 A대표팀 감독은 칭다오의 끈질긴 구애를 받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중국 축구의 오랜 관행을 잘 알고 있기에 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 감독은 1998년 충칭의 지휘봉을 잡아 첫 발을 뗐다. 충칭(1998~2001년) 칭다오(2002~2003년) 베이징(2007~2009년)에 이어 광저우에 안착했다. 중국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지만 현실은 여전히 씁쓸하고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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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주(이장수 감독 중국어 발음)는 외국인 감독 중 가장 성공한 사령탑이다. 중국 무대는 또 러브콜을 보낼 것이다.

중국 축구의 악습은 고쳐져야 한다. "리그 우승을 했다고 성공을 한 것이 아니다. 내가 떠난 이후 발자국이 깨끗하게 남았을 때, 그것이 성공이다. 그게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에 남는다." 이 감독이 광저우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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