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립서비스가 섞이긴 했지만, 넥센 김병현은 '전투 슬라이더' 덕분에 극찬을 받았다.
지난 18일 한국 무대에서 처음으로 선발 등판한 김병현은 4⅔이닝 6안타 6탈삼진 3실점을 기록했다. 자체 수치만 놓고보면 대단한 결과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상대한 삼성쪽에선 상당히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루 뒤인 19일, 이승엽을 비롯한 삼성 선수 및 관계자들의 평가를 수집해봤다.
이승엽 "올해 본 직구중 최고"
이날 김병현의 포심패스트볼은 최고 147㎞가 나왔다. 이승엽은 세차례 타석에서 김병현의 직구를 받아쳐 3루타를 기록하거나, 철저한 몸쪽 승부 끝에 몸에 맞아 사구를 기록했거나, 마지막 세번째 타석에선 직구 2개를 헛스윙하며 삼진으로 물러났다.
"김병현의 공에 어떤 특징이 있었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승엽은 "정말 놀랐다. 엄청나게 강한 직구가 들어왔다. 올시즌 들어와서 내가 겪어본 직구 가운데 최고였다. 사이드암 투수 가운데 예전에 (임)창용이가 한국에서 던질 때와 같은 직구 느낌이 났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같은 반응에는 배경이 있었다. 김병현이 이전에 한차례 불펜에서 등판해 1이닝을 던진 경기의 비디오자료를 모두가 봤다. 그때는 직구 최고구속이 138~139㎞ 정도였다. 그러자 "불펜에서 던질 때 저 구속이면 선발로 나올 때는 135㎞ 정도밖에 안 될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김병현의 이전 등판은 페이크였다. 첫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자 작심한 듯 140㎞대 중후반의 포심패스트볼을 몸쪽으로 마구 찔러넣었다. 이승엽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구속을 떠나 직구 자체가 힘이 있었다"고 했다.
슬라이더, 아름답다
삼성 최형우는 "굉장히 독특했다. 다른 잠수함투수들은 왼손타자 상대로 어떻게든 바깥쪽 승부를 하려 한다. 바깥쪽으로 찌르거나 혹은 싱커 같은 걸 떨구거나 하는 식이다. 그런데 병현이형은 전투적이었다. 슬라이더가 몸쪽으로 팍팍 들어왔다"고 말했다. 삼성 투수 정현욱 역시 "전반적으로 달아나지 않고 달려들듯이 승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삼성의 또다른 관계자는 "역시 메이저리거 출신이었다. 잠수함투수가 왼손타자에게 슬라이더를 막 들이대는 게 심리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왼손타자에게 슬라이더는 눈에 뻔히 보일 수 있는 구질이기 때문에 잠수함투수들이 심리적으로 꺼리는 구질이다. 그걸 막 넣는다는 것 자체로 김병현은 마인드가 대단하다. 특히 130㎞대 슬라이더가 위력이 컸다. 정말 '아름다운 슬라이더'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18일 등판서 김병현은 슬라이더 15개를 던졌다. 현장에 있던 모 전력분석 관계자는 "기존에 보기 어려운 스타일의 슬라이더였다. 처음에 날아올 때는 직구처럼 보인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왼손타자 몸쪽으로 휙 꺾인다"고 말했다. 김병현이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 타자가 헛스윙한 뒤 몸에 공을 맞는 장면이 있었다. 이 관계자는 "왜 메이저리거조차 그런 헛스윙을 했었는 지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더 좋은 슬라이더를 던졌을테니까"라고 언급했다.
물론 칭찬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선발로 계속 뛰기 위해선 지금보다 체력적인 조건을 강화해야한다는 충고가 나왔다. 또한 아직까지는 한가운데 실투가 많다는 얘기도 있었다. 주자 1루에서의 퀵모션에 대한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때문에 "선발 보다는 투구수 40개 정도를 기준으로 불펜에서 뛰면 더 위력적일 수 있다"고 말한 관계자도 있다.
"국내 선발 등판이 처음인데도, 무엇보다 마운드 위에서 본인이 하고픈 걸 다 해보는 마인드가 대단했다. 월드시리즈 무대에 서봤던 김병현이 아닌가. 구위 자체만 놓고보면 박찬호보다 나은 것 같다"는 얘기도 있었다. 김병현의 다음 선발 등판이 기대된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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